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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저널

#2. 후지무라 강연 “전환기 이후의 삶”

#2. 후지무라 강연 “전환기 이후의 삶”



자본주의의 붕괴는 기정사실이라고 말하는 후지무라 선생님. 문제는 ‘전환기 이후’다



여러분은 자립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습니다.


강연을 여는 후지무라 선생님의 첫 마디였다. 그는 지금의 시기를 문명의 전환기로 정의했다. ‘자본주의가 과연 붕괴될까?’라는 고민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가 사라지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대안은 무엇일지에 대해 이미 고민을 시작했다. 전환기에는 지키는 사람과 바꾸려는 사람 간의 갈등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돈과 권위가 없는 사람들은 지금 사회를 굳이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자연스러운 맥락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꿔나가는 희망을 가질 때 이런 사람들하고만 함께 할 수는 없다고 후지무라 선생님은 이야기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대부분은 기존 사회가 주는 여러 가지 이익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다. 동시에 생활 속에 겪는 갖가지 불합리와 차별로 인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기도 한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은 기득권과 변화 사이에서 흔들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상대편으로 돌리기보다는, 이들에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년들이 그리는 새로운 삶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시도들이 가능할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후지무라 선생님이 전해준 청년들의 움직임은 흥미로웠다. 미국의 청년들은 6년 전부터 “타이니 하우스 운동(Tiny House Movement)”으로 새로운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타이니 하우스 운동은 두세 평짜리 작은 집을 만들어 그곳에서 최소한의 것들을 가지고 살아보자는 제안이다. 중요한 건 그들이 타이니 하우스 운동을 하는 이유가 단지 큰집을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청년들은 예전 아버지 세대와 달리 커다란 저택을 구입해 살기 원하지 않는다. 좁은 집이지만 그곳에서 개성있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격렬하고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쿨’하게 자본주의를 넘어서버린 것이다.



미국의 타이니하우스 운동의 한 사례. 미국 청년 앤 홀리가 만든 환경친화적인 작은 집이다. 전기 플러그 없이 풍력과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한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s://goo.gl/RIrMJQ)



독일은 4년 전부터 ‘지출 제로 프로젝트’가 유행이다. 물물교환과 상호지지의 형태로 지출을 0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끼리 공감대를 쌓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서로의 지출과 각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공유한다. 각자 필요한 물건을 맞바꾸거나 경우에 따라 재화와 기술을 교환하며 지출을 줄여나간다. 두세 명만 모여서는 가진 재산과 기술의 한계가 있기에 지출을 10%나 20% 정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지출 제로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 200명이 모이면 지출을 100% 줄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공감대를 쌓는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비전화공방이 그려갈 미래


비전화공방도 결국 전환기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움직임이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부자는 더욱 부자로,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한 자로 몰아가는 자본의 논리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여섯 명이 가진 재산이 가난한 사람 36억 명이 가진 재산과 같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 엄연한 지금의 현실이다. 한 사람의 부자가 탄생하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저임금 노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 간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한 나라가 부유하게 소비하면 다른 나라는 그만큼 착취당한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과 사람 간, 국가와 국가 간 빈부격차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석탄을 사용하던 시기에 자본가가 자신이 투자한 금액의 50배를 벌어들였다면, 석유 시대에는 200배의 이익이 있다.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전환기 이후의 삶을 함께 상상해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후지무라 선생님



후지무라 선생님은 그 예로 일본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핵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을 처리할 곳을 국내에 건설하지 못하자, 몽골에 적당한 돈을 주고 처리장을 지으려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강행하려 했지만 후지무라 선생님을 비롯해 국가 간 인도주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요즘 태양열 발전이 에너지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문제가 많다는 게 후지무라 선생님의 분석이었다. 일본에서 태양열 발전기를 집이나 회사에 설치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생산한 집열판을 사서 쓰는데, 이 집열판을 만드는 데에 들어간 에너지와 집열판을 통해 5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같다. 집열판 제작에는 화석 에너지가 사용되어 중국과 한국의 대기를 오염시킨다. 정말 태양열 발전이 자원절약과 순환에 도움이 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아랑곳없이 일본인들은 과시하듯이 새로운 제품들을 끊임없이 사들이며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일방적인 한쪽으로의 쏠림을 막고, 평등하고 공정하게 나눠갖는 철학을 아로새기는 것이 비전화공방의 첫 번째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말했다. 내가 지금 쓴 에너지, 우리나라가 쓴 에너지를 타인이나 다른 나라, 혹은 후대에 전가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가지고 멀리바라보는 시야가 필요하다는 말로 모인 자리를 매듭지어졌다.


취재/글 : 조은호

사진 : 김다연

편집 : 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