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삶을 만드는 즐거움

- 스스로 만들고 즐기는 일상 1강 후기



비전화제작자로 산 2017년, 제작자 모두 작년 한 해를 넘기는 심정이 다른 해와 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 비전화제작자가 된 4월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비슷한 질문에 당면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작년 봄과 여름에는 “왜 비전화공방에 왔어요?”, “비전화공방은 뭔가요?”, “비전화공방에서 무얼 하나요?”와 같이 동기와 배경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면, 날이 추워질수록 그리고 다시 봄이 찾아드는 근래에는 “졸업 후 무슨 일을 하려고 하나요?”,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유지했어요? 앞으로도 비전화의 방식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것 같나요?”와 같이 1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가 도달한 지점이 어디냐는 질문이 많다. 묻는 이에 따라 답하는 시점에 따라 응답은 매번 조금씩 바뀌었고, 어쩌면 그 질문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하기 위해 여태 고군분투해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문화비축기지와의 프로그램은 그 답을 보여줄 적당한 장이었다. 비전화공방서울 사업단을 통해 비전화공방에서의 배움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비전화제작자 1기 모두가 각자 방점을 두고 있는 혹은 나눌 수 있는 역량을 중심으로 함께 일하는 기회를 가져보기로 했다. 무엇으로 시민들에게 말을 걸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그들의 고민과 우리의 삶이 맞닿을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전할 수 있을까. 총 7회의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일상』은 여러 측면에서 지난 시간들을 응축하고 체화하는 시간이었다. 비전화제작자 1기가 서로가 외부의 요청에 응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동료로 일할 수 있을지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기존의 것들과 어떤 점에서 같거나 다를 수 있을지 확인해보는 상황이기도 했다.


개론 격이자 1강이었던 「바라는 삶을 만드는 즐거움」을 준비하는 과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이 주제로 어떤 처지와 마음가짐의 사람을 우선 만나보고 싶은지 그렇다면 그 방법은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지 함께 하는 제작자인 모로, 진뭉과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눴다. 그 후 각자가 이 장에서 어느 정도의 품과 시간을 내고 싶은지 솔직하게 꺼내놓고 역할을 조율했다. 서로가 맡은 일을 준비해오면 함께 살펴보면서 보완하거나 수정할 점들을 맞춰나갔다. 서로의 빈 곳을 메우고 얹어가는 과정이 때로는 더디거나 버겁기도 했지만, 그 과정 동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과 중심으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서로를 상기시켰다. 세세하게 분업하고 함께 일하는 이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일하는 방식이 능숙했던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의와 질의응답을 준비하며 비전화공방에서의 생활을 들춰보고 재배열하면서 센세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한 순간순간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의 1년을 가지런히 배치해보며 내가 무엇을 느끼고 익혔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문화비축기지에 우리와 이야기나누기 위해 찾아온 사십여 명의 시민들과 눈을 맞추며 그들이 이곳까지 찾아온 수고가 괜한 것이라 여기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다행히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들어주셨고 날카롭게 물음을 던지시기도 했다. 완벽하거나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지나온 1년과 앞으로 함께 하고픈 시간과 방식에 대해 손을 내민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자평해본다.





추상적이라 느낄 수밖에 없었을 우리는 이런 일상을 살아왔고 살아갈 거라는 다짐들. 그리고 우리 외에도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고 살아갈 방안들도 여럿 있다는 제안들. 우리가 날린 말들이 얼마나 그분들의 가슴에 씨앗으로 심어졌을까. 하지만 겨우 이제 시작이다. 농사에서 배웠듯 설령 발아하지 못한 싹이 있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흙의 상태를 살펴가며 적절한 모종을 심고 꾸준하게 물을 주는 일. 우리가 비전화공방에서 배운 전부는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함께 하면 그 일들이 더 즐거워질 것이라는 기대. 그 희망이 우리를 자꾸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한다.   


글쓴이 :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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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 2기 모집 설명회에서의 질문과 답변



비전화 2기 제작자 모집을 위한 두 차례의 설명회가 공방 사무실에서 열렸습니다. 

설명회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을 공유합니다. 




Q: 제작자 선발기준이 어떻게 되나요?


선발 기준은 첫 번째도 체력, 두 번째도 체력이에요. 일년의 과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에요. 선택 결심이 필요해요. 일년을 견딘다는 건 스스로에게도 도전 일 거에요. 자기 마음의 힘, 마음의 체력도 필요하고 집 짓고 제작하는 것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더라고요. 건강해야 가능한 일들이 많아요. 체력을 많이 봐요.

두 번째는 함께 하면서 좋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인가에요. 자기가 어떤 의지와 신념들을 가지고 이곳에 오는가도 봐요. 하지만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체력이에요.

‘함께 생활하기’라고 해서 제작자 생활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파악할 수 있기도 해요. '말'만으로 보고 뽑진 않아요.



Q: ‘함께 생활하기’는 2기 신청자들이 다 참여 할 수 있나요?


2차로 통과된 분들 대상으로 진행해요. 저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최대치로 열 두 명이더라고요. 지원 과정에서 함께 하시지 못하는 분들은 저희와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지원하신 분들과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어요. 과정 중에 제작자가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는 시민 강좌나 워크숍을 열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어요.



Q: 결석을 많이 하게 되면 불이익이 있나요?


출석률에 대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자발성이 중요해요. 한 사람이 덜 나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줘요. 열 두 명이면 세 명씩 나눠져서 밥도 하고 제작 활동도 같이 하게 되요. 빠지게 될 시 사정이 생기면 미리 양해를 구하해요. 하지만 많이 빠지 게 되면 함께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자신에게 공방에서 일 년을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 일 순위인게 중요합니다.



Q: 밥은 어떻게 같이 해 먹나요?


원래는 비전화공방 전용 부엌이 있는데요 지금은 혁신센터 공용부엌에서 해 먹고 있어요. 텃밭에서 키운 것들로 요리하기도 하지만 겨울철이나, 20명분을 다 자급하기엔 무리가 있어 생협에서 재료를 사와서 하기도 해요. 메뉴는 그날 식사 팀이 결정해요. 채식하는 분이 있어서 고기가 나오는 날은 두가지 버전을 만들기도 해요.



Q: 일 년의 과정 동안 제작자 각자의 생활비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아침, 저녁 알바와 주말 알바를 하기도 하고, 적금을 깨기도 하고, 청년 수당을 신청하기도 해요. 기회가 되면 공방에 들어오는 작은 일거리들을 연결해 주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제작자 각자가 온전하게 감당해야 할 부분이에요.

그리고 훈련 과정 중에 자기 지출을 밝히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이 있어요. 올 해는 자기 지출 패턴을 재구성하는 것을 좀 더 일찍 시도해 보려 해요.





Q: 제작자 과정이 끝나는 1기는 이후에 무엇을 하나요?


외부에서 비전화 공방으로 다양한 기회를 제안해와요. 그런 기회가 오면, 이제는 1기 제작자들이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수행과정으로 삼기도 해요. 1기는 이제는 현실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초기 자금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주고, 사업단이 사회적 자원을 연결하는 것도 계속될 거에요. 일 년 과정이 끝나도 후지무라 선생님과도 짧게라도 만날 수 있는 자리도 가지고요.

비전화 공방은 자기 삶의 기반을 실제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제작자 이후 과정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어요. 비전화 카페 시범 운영도 1기에게 자치적으로 맡겨 보려 해요. 카페는 비전화 가치와 철학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해요.



Q: 제작들이 일년 동안 낙오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나요?


제작자 과정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동기는 자기 자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에요. '이게 하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거야?'를 계속해서 물어요. 자기 자발성에 기반한게 아니면 지속성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작자 과정에서는 자기 자발성을 어떤 식으로 우리 안에서 이어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했어요.



설명회에서 답변하는 1기 제작자(단영, 로미)



Q: 제작자들 간의 갈등은 없었나요?


제작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남은건 동료에요.'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희는 지난 주 이야기를 털어 놓고 월요일을 시작하는 '한 주 열기'를 해요.

그리고 관계가 전환 되었던 것은 24시간 함께 생활했던 일본비전화공방에서의 시간이었다고 해요. 거기서 맺어진 신뢰와 안정감으로 지금까지 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료가 되기 위해서 갈등은 필요해요. 동료가 되려면 지지고 볶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게 중요하지요. 갈등이 '드러나서' 해소될 수 있는 구조가 우리에게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갈등은 말로 풀지만, 생활과 삶의 영역에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층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생각하는 바는 다르지만, 목공 작업 스타일이 잘 맞을 수 있지요. 제작자 과정은 생활과 삶의 영역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층위가 다양하고, 대화의 영역만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소통을 할 수 있었어요.



Q: 후지무라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철학과 가치를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삶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분은 많지 않아요. 그 철학이 실제 삶에 반영되기 위해 실천하는 분이에요. 제작자들이 어려움이 부딪히면 센세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을 보면서 그 철학이 제작자의 삶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Q: 비전화 공방’서울’인데 다른 지역으로 거점이 다양해질 수 있나요?


저희가 하려는 것에 있어서 지역성과 공동체 단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비전화공방서울'로 이름을 지었어요. 저희는 서울지역 안의 모델이고 다른 지역으로 거점이 다양하게 생겨나는 게 저희 활동의 의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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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기르기

황지현



지렁이 데려오기

지렁이를 처음 데려온 건 14년 봄. 지렁이를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통을 챙겨 무작정 서초동의 에코붓다사무실로 향했다. 담당하시는 분께서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주걱으로 지렁이를 푹푹 퍼서 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


 

지렁이의 집

지렁이를 담은 통을 들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집에 도착해 풀어보니 지렁이가 위독했다!

그제야 지렁이 집을 급조하기 시작했다. 토분이 좋다는데, 밖에 나가서 찾아보니 그날따라 버려진 플라스틱 화분 쪼가리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 그렇다면 있는 걸로 해결하자! 버리려던 스티로폼 박스에 구멍을 뚫고, 신문지를 깔았다. 그리고 한밤중에 뒷산에 올라 흙을 퍼 담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지렁이 집! 여기에 실신한 지렁이들을 고이 뉘여 드리며 지렁이 기르기가 시작되었다.

 


지렁이의 먹성, 생각 같지 않더라.

물만 주며 적응하는 1주일이 지난 후 음식물쓰레기(이하 음쓰) 먹이기에 도전해보았다. 한쪽 구석을 파고 잘게 썬 야채 부산물, 과일 껍질 등을 넣고 흙으로 잘 덮어주면 된다. 다음번 먹이를 줄때는 다른 한쪽을 또 파고 주는 식이다.



무엇보다 지렁이가 좋아했던 건 축축하게 부숙된 야채였다. 단호박이나 수박 등을 주면 깨끗이 파먹어서 아주 얇은 껍질과 씨앗만을 남겨놓곤 했다. 지렁이들이 바글바글 음쓰에 몰려있을 때의 뿌듯함이란(먹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지렁이들이 몰려있다면 환경에 문제가 있는것이라고 한다.) 

과일껍질은 단독으로 주면 안 된다고 해서 다른 음식을 줄때 곁들여서 제공. 농약이 묻어있을 확률이 많은 수입과일도 제외, 소금기가 빠진 잔반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혹시 몰라 제외하였다. 간혹 육류나 생선을 먹이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거기까진 도전해보지 않았다.



이렇게 엄선해서 지렁이 먹이를 대령하다 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뭔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지렁이들이 하루 한봉지씩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줄 줄 알았는데, 실제로 얘네 들은 고작 하루에 자기 몸의 반정도밖에 먹지를 않았다. 당시 우리집에서 나오는 음쓰를 바로바로 처리하려면 거의 방 하나에 흙을 때려 붓고 지렁이 사육장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미처 먹이지 못한 음쓰들이 냉장고에 쌓여갔다. 수박한통 먹고 나서 거의 한달 넘게 수박껍질을 보관했던 기억이 난다. 오직 지렁이에게 먹이기 위해...

얼마 후 나간 지렁이 엄마 모임에서 이 사실을 이야기 하니 밀린 음식물쓰레기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건 본래 취지랑 어긋난다고 해서 상당수의 음쓰를 그냥 버렸다. 그 후 재고를 쌓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그냥 처음부터 음쓰를 적게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음식이 상하지 않게 재고 관리를 철저히 하고, 웬만하면 다 먹자!

 


위기

지렁이 기르기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을 무렵, 먹이를 주려고 지렁이 집으로 갔는데 분명 덮어놓았던 뚜껑이 열려있고 스티로폼 쪼가리가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통을 열고 흙을 파보니 지렁이가 없다?! 몇마리 남아있던 지렁이들이 빠르게 흙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범인은 ''였다. 배수구를 통해 들어온 쥐가 지렁이를 야금야금...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렁이 집 뚜껑은 동물이 열기 힘들게 만들라' 는 교훈을 뒤로 한 채,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새 출발을 했다. 다행히 계절이 가며 지렁이들은 다시 세를 불려나가기 시작했고, 흙은 데글데글하니 비옥해졌다.

 


지렁이의 죽음

이듬해 초여름 이사를 했고 두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수분관리!! 늘 습했던 이전 집과는 달리 새로 이사한 곳은 해와 바람이 잘 통하는 보송보송한 곳이었다. 따라서 축축함이 유지되도록 지렁이 집에 물을 자주 뿌려줘야 했지만 깜빡하기가 일쑤. 이때쯤 밖으로 기어 나와 말라붙어 죽어있는 지렁이가 한두마리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환경이 맞지 않으면 밖으로 기어 나온다) 그렇게 개체수가 줄어들 무렵 방심하고 며칠 물 관리를 잊어버린 사이 지렁이는 모두 운명하고 만다. 마음이 썰렁했다. 지렁이를 기른지 일년 반 만이었다.

 


그 후의 이야기

지렁이를 기르고 얼마 안 되어 지렁이 집에서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먹고 버린 파프리카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었다. 조심스레 파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때늦게 발아한 씨앗은 집안에서 겨울을 난 후 옥상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이 옥상텃밭의 시작. 그 후 집 근처에 공동 텃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5평의 땅을 분양받은 후 지금까지 거기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지렁이는 갔지만 나에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었다.


옮겨심은 파프리카 싹. 다음해 열매까지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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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 모으기

윤명(샘)


"똥살리기 땅살리기"라는 책을 읽은 난 똥과 오줌이 모으고 싶어졌다. 이십 년 넘게 변기로 버려 온 똥과 오줌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는지도 충격적이었지만, 땅을 기름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똥오줌으로 거름을 만들어도 뿌릴 땅이 내겐 없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도시농업을 하는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고, 거름을 뿌릴 땅이 생긴 난 오줌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줌을 모아 거름으로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페트병에 오줌을 받고 뚜껑을 닫은 뒤 일주일을 기다리면 거름이 된다. 뚜껑을 닫으니 냄새가 새어나오지도 않아 모으기 간편하다. 하지만 냄새가 나지 않음에도 가족들의 반발을 피해갈 순 없었다. 시각적인 효과 때문인지 어머니는 계속해서 오줌을 모아 놓은 페트병 때문에 집안에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나를 나무라셨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2년 동안 모았다. 2년 동안 계속되었던 어머니의 냄새에 대한 편견은 놀랍게도 집에서 ""을 모으게 되면서 바뀌게 되었다.


오줌을 모으다 보니 똥도 모으고 싶어졌던 내게 "똥을 실험하다"라는 다큐에 참여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누나라는 응원군 덕에 우리집은 한 달간 양변기를 봉인하고, 똥과 오줌을 모으게 되었다.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똥냄새가 나면 중간에 그만두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냄새가 났다. 똥냄새가. 안 날 거라고 호언장담했었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볼일을 보고 넣어주는 왕겨가 수분 흡수를 제대로 못 해서 생긴 문제였다. 왕겨 대신 톱밥을 넣어주면서는 냄새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냄새는 커녕 오히려 나무향이 나서 어머니가 전보다 화장실 냄새가 더 안 난다며 좋아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냄새에 대한 편견을 버리시게 되었다.


하지만 실험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내가 도시농업을 그만하게 되었고, 뿌릴 밭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오줌을 모으는 것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집 건물 바로 뒤 공용부지의 땅을 어머니가 텃밭으로 쓰게 되었다. 다시 거름을 줄 수 있는 땅이 생기자 나는 다시 오줌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역시 얼마 가지 못했다. 오줌 거름에서 난 냄새를 맡은 이웃 주민이 어머니께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주의를 줬기 때문이다. 오줌을 모으지 않게 된 이후에도 오줌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들었다. 오줌을 찔끔 쌀 때마다 낭비란 생각에 변기물을 내릴지 말지 고민이 들었던 것이다. 약간은 멍청하게도 오줌을 모은 다음 페트병이 꽉 차면 그때 변기에 버려도 괜찮다는 생각이 몇 년이 지나고서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오줌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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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먹기

까망별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한다는 말이 있듯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싸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먹을거리가 어디서 어떻게 몸속으로 들어 왔는지 아는 것처럼 나의 몸속에 있었던 것이 몸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되지는 알고 싶었다.

 

사실 대변이나 소변을 모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3달 정도 된 것 같다. 그럼 나의 대변과 소변이 내 몸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면 일단 간단하게 3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소변과 대변을 따로 모은다. 두 번째 소변은 통에 모아 숙성을 하고 대변은 모아지면 텃밭의 퇴비 간에서 숙성의 시간을 가진다. 세 번째 잘 숙성된 소변과 대변은 텃밭의 거름으로 쓰인다. 간단하게 보자면 이렇게 된다 사실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첫 번째이다.


소변통


대변통

 

소변과 대변을 모으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긴 했다. 두려움과 설렘 괜스레 당혹감이 다가왔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소변통과 대변통을 구했고 화장실에 비치에 두었다. 소변은 그때 그때 모아두어서 수월 하긴 했지만 대변이 문제이었다. 일단 대변을 통 안에 두고 냄새를 나지 않게 하려고 마른풀로 덮어 두었다. 하지만 그래도 냄새가 나서 통을 밖에 두고 뚜껑으로 덮어 두었다. 그래도 남은 화장실의 냄새는 촛불을 키고 창문을 여니 옅어졌다.


 

대변 손수건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는 휴지였다 예전에는 대변을 보고 휴지를 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대변을 본 뒤 손으로 닦고 물로 씻은 다음 손과 허벅지 사이로 흐르는 물은 전용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손수건은 수시로 빨게 되어 휴지도 화장실에서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사실 지금 화장실은 현대수세식 화장실이다 그래서 처음엔 불편한 변화라고 생각 했지만 그냥 물로 흘려보내는 것 보다 싸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텃밭의 거름이 되니 이제는 건강한 변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계기는 이렇다

텃밭 농사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중 퇴비를 알게 되었고 그 퇴비는 여러 가지로 만들어 지지만 사람의 배설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이었다 땅에서 자라는 작물에게도 좋고 변기 물을 한 번 더 내리지 않으니 더 좋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촛불


노하우라고 할 것 까진..

일단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 냄새가 나고 왠지 몸이 간지러울 것 같고 속이 울렁거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작은 노하우라면 촛불로 냄새를 가리고 간지러움은 물로 흘려보내면 마른풀로 울렁거림을 감추면 될 듯싶다 거기서 최고는 그냥 해본다.‘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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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모두의 건강을 위한 아름다운 습관!

비놋 샤히


안녕하세요. 저는 비놋 샤히입니다. 저는 네팔 사람이고,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돌포에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화학물질을 적게 쓰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저는 1년에 6개월 정도는 수도인 카트만두, 그리고 나머지는 돌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돌파는 제가 천국으로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오래전에 티베탄 사람들이 넘어와 거주를 시작하고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수도와 멀리 떨어져있어 발전이 덜 된 곳입니다


돌파 주민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 자급자족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점차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비닐로 싸인 음식들, 짧은 시간동안만 사용되는 수 많은 물건들... 아름다운 돌파에도 점차 비닐, 쓰레기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환경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변한 식습관으로, 흔하지 않은 암이란 병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돌파를 통해 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발전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주민들은 점차 자신의 고유 음식보다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이 더 좋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을과 그들의 건강이 점차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때, 저는 친구와 함께 결심했습니다. 화학물질을 적게 쓰기로. 첫째, 비닐로 싸여져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로컬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돌파 사람들에게도, 스스로 요리한 음식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돌파에 떨어져있는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종류별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신발, 유리병, 캔 등등... 그리고 어떻게 재활용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쓰레기를 모으는 돌파 어린이들

 

병을 모아 학교를 세우는 재료로 쓰기로 계획하고, 고무 신발을 모아 집 바닥에 깔아, 추위를 막는 용도로 쓰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로컬 사람들과 플라스틱을 모아 작품을 만드는 워크숍을 오는 1월에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트레킹을 가는 곳곳마다, 비닐과 플라스틱 용품을 덜 쓰도록 권유했습니다.

 

저는 늘 발전에 대해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발전을 원하지만, 점차 부작용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더 현명해져야 합니다. 비닐로 싸여져있는 음식보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먹고,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우리 자신의 건강와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돌파의 아름다운 풍경과 집 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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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준비를 시작할 때

윤태임

 

11월이면 우리 동네는 겨울 준비를 시작할 때입니다. 감나무가 많은 우리 동네의 골목 끝이 우리집인데 포도넝쿨이 무성한 아랫집은 지난주 토요일에 마당과 지붕을 비닐로 포장을 하였답니다. 한참 추울 때는 바깥보다 방안온도가 싸늘해서 뼈 속까지 추위가 느껴질 때가 있었으니까요. 1년의 사계절을 느끼면서 세월의 변화를 몸소 알게되는 단독 주택의 고즈넉한 가을이 깊어가는 요즈음입니다.


나도 서서히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지난 일요일 먼저 지난 여름 더위를 식혀주던 고마운 선풍기를 분해하여 곱게 닦아 덮개를 씌워 치웠습니다.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면서...

그리고는 여름철 겉옷 벗듯이 더울새라 떼어 놓았던 이중창을 달고 다소 묵직한 커튼을 꺼내 마루며 방마다 알록달록 매달았습니다


훨씬 안온한 느낌이 드네요. 한겨울에는 이것으로는 찬기를 맊을 수 없더라고요. 우리집은 유난히도 창문이 많아 여름에는 정말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추워서 손이 곱아 글씨 쓰기가 불편할 정도에요. 온풍기나 히터를 켜 볼까 생각했다가도 전기값과 화재의 위험 때문에 생각을 접었지요. 바닥의 온도를 높여보면 좀 추위가 덜 할까 싶어 궁둥이가 따끈 할 정도로 온돌방처럼 지진다고 좋아했다가 전기세 폭탄을 맞았지요.


돈 한푼이 아쉬운판에 우선은 겨울 난방비를 고려 안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창문마다 뽁뽁이 붙이기와 비닐 커튼을 만들어 커튼 속에 덧달기였어요. 비닐의 윗부분에 천을 대고 꼬매면 커튼핀을 꼽을 수 있게 됩니다. 거실과 창문위에 커튼을 달듯이 비닐커텐을 속에 달고 겉커튼을 치면 바깥 공기가 차단되거든요


그리고는 약국에서 파는 빨간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담고 겨드랑이에 끼고 잠자리에 들면 세상 부러울게 없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아주 추우면 침낭을 이불속에 깔고 들어가 자기도 했답니다. 신기하게도 전혀 안추웠어요. 게다가 빨간 물주머리는 아침까지도 매지근하답니다. 다음날 그 물 또 데워 물주머니를 채우고 하면서 나름 재미있었던 잠자리 의식이였지요.


그때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었던 온수매트는 더 추워, 정말 추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그날에 옹기종기 모여 발을 디밀고 길게 놓아 세식구의 등을 따습게 덥힐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어요. 언젠가 세식구가 1인용 매트에 가로로 등을 대고 누우니 꽉찼지요. 누군가 한마디 했어요. 지금 보다 더 살찌면 매트에 같이 누울 수 없을테니까 더이상 살찌지 말기 하자고, 그러자 그러자하고 맞장구치면서 행복감이 밀려왔던 느낌에 서로 등을 부비댔었지요


돈이 빠져버린 자리에 사람의 정이 채워지는 겨울 준비를 하면서 새록새록 또 한해를 보낼 준비를 합니다. 다시 새로 채워지는 다가올 봄을 기다리면서 긴 겨울과 친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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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깨닫는 노프 8개월 실험기

임정아

 

샴푸에 들어있는 화학성분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얼마나 자연에 해가 되는지, 게다가 모발의 자체 기능마저도 상실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내 몸과 자연환경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 알고 있을 터이다. 특히 일반 샴푸에 들어있는 계면활성제가 두피에 남아 쌓이는데, 5분 이상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야 겨우 제거된다고 하니 사실상 얼마나 많은 화학성분이 몸에 쌓이는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그럼에도 선뜻 샴푸를 사용하지 않게 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자연 환경이나 신체에 덜 위협적인 생협제품 등으로 바꾸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생협에서 만든 천연비누와 구연산, 식초를 사용하게 되었다.

 

기존 샴푸보다는 확실히 생협에서 판매하는 것이 덜 자극적이다. 향기도 좋다. 때로는 샴푸 대신 비누를 사용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비누를 사용하면 기름기가 빠져 머리가 엉켜버리고 뻑뻑해져 빗질하는 과정이 즐겁지가 않다. 그래서 식초 혹은 구연산을 물에 섞어 헹궈주면 린스를 한 것처럼 부드러워진다. 이 때 시큼한 향이 나는 식초보다 구연산을 일반적인 분무기에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 물과 섞어 머리에 뿌려준 후 헹구면 시큼한 향도 나지 않고 사용도 간편하다. 한동안 이 방법으로 머리를 감았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입덧이 시작되니 각종 비누며 샴푸향에 민감해졌다. 비누와 샴푸의 향을 바꿔도 헛구역질 등 올라오는 반응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임신으로 몸이 예민해지니 알아차리게 되었다. 생협제품 역시 덜 민감할 뿐 여전히 인위적인 제품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감는 것이다.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간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비누나 샴푸로 거품을 잔뜩 내어 빡빡 씻어주던 것에서 그냥 물로만 씻어주면 뭔가 다 씻기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따뜻한 물로 머리 곳곳을 문질러 줄 수 있는 빗과 같은 게 있으면 좋다. 기존에 머리를 감을 때는 머리카락을 씻는 느낌이었다면 물로 씻을 때는 두피를 씻어주는 느낌으로 씻는 편이 더 좋다는 것도 알았다. 머리를 다 감고 나서 말릴 때도 부드러운 빗으로 빗어주면 좋다. 이렇게 대략 3~5개월이 지나면 처음에 물로만 감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머리카락이 된다.

 

이 과정이 조금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물로만 씻을 때는 머리를 감고 나서 내 손에 기름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 머리를 감았는데도 머리에 두툼한 뭔가 올려져 있는 느낌, 머리를 감고 난 후 드라이기로 말릴 때도 기름을 바른 것처럼 이렇게 넘기면 이대로 있고 저렇게 넘기면 저대로 있는 머리카락의 묵직함, 그리고 비듬 등 두피에서 떨어지는 하얀 것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 시간이 지나면 기름기가 빠지고 머리를 감고 말리는 과정에서도 그 전에 느껴졌던 묵직함이 사라지고, 머리카락에 윤기가 나는 느낌이다. 곱슬머리인 내 자체 머릿결도 살아난다.

 

반면 마지막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건 향이다. 내가 먹은 것, 마신 것, 숨 쉬는 것으로 인해 내게서 나는 향이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각종 좋은 향으로 덧씌워졌던 것들에서 벗어나니 내 몸에서 나는 향이 어색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싶다. 익숙해져버린 좋은 향에 대한 나의 관념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실제 나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어색하고, 코를 자극하는 좋은 향에 매료가 된다. 그래서 지금은 나 역시 샤워를 마친 후 천연 오일을 몸에 발라주고 있지만 나는 오일을 왜 바를까,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내게서는 어떤 향이 날까하고 살펴보고 있다.

 

노프를 위해서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공해 등 주변환경과도 연계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먹거리를 포함한 주변환경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에도 자연스레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동안 좋지 않은 것을 독한 으로 덮어두었던 것에서 민낯을 확인하니 이제야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인이 좀 더 분명히 살펴지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변화는 혼자서 하기는 어렵게 느껴진다. 삶의 노하우나 방향을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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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이나 호일 쓰지 않기

하정


저는 2010년도에 아일랜드 캠프힐이라는 공동체에서 1년 간 장애우들,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살고 일하는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그곳의 생활은 한마디로 Organic 했어요


텃밭에서 각종 채소와 과일을 길러 먹었고 자급할 수 없는 식재료들은 모두 유기농을 구매하는 것이 원칙이었어요. 비료는 우유를 짜기 위해 기르는 소의 분변이나 각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장애우들의 복지를 위해 정부와 캠프힐에서 정한 규칙들이었는데, 평소 한국에서 편하고 쉬운 생활을 하는 것에 익숙했던 저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어주었답니다.

 

캠프힐의 여러 수칙 중, 우리의 생활에서 간단히 실천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랩이나 호일을 쓰지 않기 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엔 쓰긴 했지만, 최대한 사용을 자제했어요. 우리가 랩과 호일을 가장 빈번하게 쓸 때는 아마도 먹다 남은 음식을 뚜껑이 없는 그릇에 보관해야 할 때 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와 새로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랩과 호일을 아예 사지 않았어요. 그러면 어떻게 음식을 보관하냐고요? 아래 사진을 보세요


이렇게 먹다 남은 음식이 있다면,


음식이 담긴 그릇보다 조금 큰 접시나 그릇을 이용해 덮어줍니다.



이렇게 냉장고에 보관하면 랩이나 호일을 쓸일이 조금은 줄어든 답니다. 뻔히 알고 있는 방법이지만, 이런 경우 버릇처럼 랩과 호일을 버릇처럼 서랍에서 꺼내 쓰고 계시진 않으신지~ 


<쓰지 않는> 버릇 하나를 가져보시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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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전기

이민수

 

1인 세대주인 나는 한달에 전기를 40kWh 남짓 쓴다. 작년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대국민 선물과도 같은 요금제 개편으로 올해는 전기요금을 낼 기회조차 많지 않다. 참 더웠던 지난 여름 나의 8월 전기요금은 1920원으로 사용량이 50kWh 정도 되었다. 한전은 청구금액이 2000원 미만인 경우 청구서를 보내지 않기에 요즘은 보통 두 달에 한 번 청구서를 받는다.



한전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월 100kWh 이하의 전력을 쓰는 가구는 전체의 18.8%(4.36백만 가구)이라고 한다. 폐쇄적인 공기업답게 한전은 보다 상세한 사용량 통계를 밝히지 않아 전체 분포에서 나의 위치를 알 수는 없다. 다만 통계 일반론으로 추정하건대, 또 지인들이 나의 전기요금을 듣고 놀라는 경험에 비춰보건대 나의 전력 사용량은 절대적으로 볼 때에도 낮은 수준인 것 같다.


나에게는 남들보다 전기를 적게 쓰는 노하우가 있는가? 사실은 잘 모르겠다. 집에 가전제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에어컨도 있고 헤어드라이어도 있고, 냉장고 세탁기 PC모니터 전자레인지 커피포트도 있다. 평소에 전기를 아껴야겠다고 새삼 생각하는 경우도 없다. 더구나 올빼미 타입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내가 전기를 이 정도

쓰며 지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전력 사용을 아끼려고 별스러운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전기를 포함해 모든 에너지 사용은 개인의 생활습관에 철저히 결부되어 있다. 먹고 씻고 놀고 머물고 이동하고 미디어를 즐기는 등 현대인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 소비를 수반한다. 더구나 그들 경험의 질은 대체로 에너지 소비량에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보통 에너지 다소비와 같은 방향을 가리키게 된다.


그렇기에 에너지 사용패턴을 바꾸고 새로운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매순간 불편해질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전기 절약의 경제적 유인은 매우 낮다. 지구 보호, 환경정의 실천 따위의 추상적 가치를 붙잡고 명백한 일상의 불편함 내지 삶의 질 저하를 감수하겠다는 개인의 결심이란 너무 작위적이어서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다만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밝은 실내조명이 부담스럽고, 3층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어색하고, 텔레비전에 관심이 없고, 에어컨 바람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훈육의 철학, 개인적 관심분야와 학습경험 등의 결과, 나는 성인이 될 때쯤부터 자원 낭비에 민감해지는 성격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똑같은 일을 보다 적은 자원 투입으로 해결할 때의 쾌감을 즐기게 되었다. 김생민이 영수증 놓고 고민하듯, 여러 자원의 출처와 연원, 그 효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쾌감을 얻을 기회도 굉장히 많다. 그것을 즐기는 가운데 어느덧 나도 모르게 전기를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주장을 보충하는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기 어려운 것을 보면 나 스스로도 왜 어떻게 전기를 덜 쓰며 살 수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가 전기를 덜 쓰며 살도록 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기성세대로 하여금 전기를 덜 쓰며 살도록 하는 데 드는 에너지보다 훨씬 적게 들 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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