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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함께하는 비전화공방/비전화수기

[비전화수기] 언젠가부터 화장품을 살 때 엄격한 기준이 생겼습니다.

언젠가부터 화장품을 살 때 엄격한 기준이 생겼습니다.

김윤희


전성분을 확인하고 화학성분을 최소화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그 기준이 생기고 나서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돈 씀씀이가 줄었습니다. 기준에 따라 살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이에요. 서울에 많은 화장품가게의 연중 세일이나 인터넷커뮤니티에서 올해의 화장품, 잇템을 얘기해도 전성분을 따지기 시작하면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화학성분의 남발이 많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요즘 유행하니까~ 라고 물건을 들어봐도 뒤에 쓰인 전성분을 확인하면 미련 없이 내려놓게 됩니다. 오히려 그 기준 덕분에 사는 것이 심플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머리를 감는 샴푸, 린스, 가끔 헤어 에센스와 왁스를 바르고 얼굴에는 오일, , 아이크림, 요일별 다른 로션, 몸에 바르는 로션 온몸 오일이 따로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2-3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쓰는 시간, 고르는 노력, 돈은 줄어들고 피부는 더 좋아졌죠. 그리고 스트레스도 없어졌습니다. 이게 좋다는데, 저게 좋다는데? 에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다양한 화장품 정보(?) 뉴스에 혹해서 사들이던 시간들이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입니다. 예전에는 사놓고도 쓰지 않고 남들 좋다는데 나한테는 안 맞더라 하는 게 참 많았거든요.


머리를 감을 때는 창포비누를 쓰거나 계면활성제 설페이트류가 들어가지 않은 샴푸를 씁니다. 창포비누는 쓰면 머리가 좀 더 뻣뻣하고 비누가 물러서 쓰임이 좀 헤픕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으므로 애용하고 있습니다. 바디워시는 예전에 공정무역 쉐어버터가 들어간 비누를 썼는데 올해 여름, 삼베로 만든 샤워타올을 쓰면서 바디워시를 쓰는 것 자체가 줄었습니다. 삼베로 만든 수세미가 세제를 쓰지 않아도 기름기 설거지가 가능하다고 해서 샀는데 써보니까 괜찮아서 몸에도 괜찮겠다 싶어서 쓰게 되었는데 물론 귀찮습니다. 쓰고 잘 말려야 하고 아주 기름기가 많은 것은 비누를 써야 하죠. 한번씩 베이킹소다물에 담가놓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크릴 수세미의 미세 플레스틱 걱정을 안해도 되고 세제도 적게 쓰니 훨씬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면 색조 화장품은 사는 것이 좀 더 까다로워집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을 (그 정보를 공개한 제품도) 한국에서 찾기 어렵고 전성분에서 많이 첨가되지 않은 것 몇 개를 해외 직구를 통해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입술 색을 내는 종류들은 많지 않고 있어도 그나마 발색이 칙칙합니다. 바르면 오히려 얼굴색이 죽어 보일 때도 있어서 입술 색을 내는 것은 그냥 일반 화장품 회사 것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입술틴트나 립스틱에 있어서 대체제를 발견하지는 못해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선크림은 내가 씀으로 인해 바다의 산호를 죽일 수 있는 성분이 아니라 나노화하지 않고 코팅하지 않은 징크옥사이드가 들어간 제품만 씁니다. 이런 화장품들은 방부제인 페녹시에탄올과 파라벤 대신 토코페롤- 비타민 e를 방부제로 사용하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좋은 성분의 제품을 고르는 팁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선크림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백탁 현상이 심하고 한여름에는 땀이 흐르는 데로 하얀 땀줄기 자리가 만들어지곤 합니다. 그게 유일하지만 엄청난 단점이죠. 바르고 안 바르고 티가 너무 선연하고 한여름에 안 그래도 더운데 오일 성분이 많고 피부에 발림성이 좋도록 만드는 성분들이 첨가되지 않았기 때문에(디메치콘, 카보머, 글리세린 등등 많습니다) 잘못 바르면 얼굴이 하얗게 얼룩덜룩해집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상으로 많은 팁을 공유를 했는데(에어퍼프를 쓴다, 다이소 똥퍼프를 쓴다) 그것들도 일회용품을 쓰는 것인지라 저의 방법은 손을 맞비벼서 열을 낸 다음 크림을 바르고 손의 열기로 얼굴을 지긋이 누르는 것입니다. 열기로 녹이는 것인데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이제는 그 기다리는 시간에 느긋해졌습니다. 뭔가를 줄인다는 것은 좀 더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는 것, 좀 더 느린 속도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것은 한 가지를 줄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 화장품 하나를 따지다보면 삶의 다른 부분으로 곁가지가 뻗어나갑니다. 저의 경우 화장품 전성분을 신경 쓰다 보니 아니 그렇다면? 하면서 내 몸에 닿는 천을 신경 쓰게 되고 그러면 옷을 신경 쓰고, 패스트 패션을 사입기 보다는 좀 더 비싸더라도 천에 신경을 쓰고 공정무역이나 제대로 노동에 대해 지불한 옷감이나 옷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일회용 생리대 대신에 천생리대를 쓰고 그러다 생리컵을 쓰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순간들이 그때 그때 알아차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유난이겠지만 효율성이 아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고자 할 때 세상이 또 반 발짝 달라지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