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민과 함께하는 비전화공방/비전화수기

[비전화수기] 관대해지는 쪽으로

관대해지는 쪽으로.

박근희



봉투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크진 않지만 혼자 사는 나에겐 딱 알맞은 사이즈의 장바구니다. 직접 산 것도 아닌데 내 것이 되려니 눈에 딱 들어온다. 동네 친구가 아름다운 가게에 물품을 보내기 전 에코백들을 잔득 꺼내 놓으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가라 한다. 그 중에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가방을 골랐다. 장바구니로 쓰면 되겠다! 가만히 보니, 장바구니로 만든 가방이었다. 이후로 장을 볼 때마다 챙기는 아이템이 되었다. 그러나 무섭고 무시하지 못 할 것이 있었으니 습관이라는 것이 그랬다. 플라스틱을 줄여 나가고 친환경적인 것을 쓰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순간의 선택은 습관을 무섭게 따라 나선다. 예를 들면 외출을 나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트나 편의점에 들른다. 집에서 누가 메로나를 사오라 한 것도 아닌데, 나는 꼭 이것저것, 끼니로 삼을 것들을 잔뜩 사서 계산대로 향한다. 그때서야 집에 둔 장바구니가 떠오른다. 뒤에 손님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직원은 바코드를 찍으며 묻는다. “봉투 드릴까요?” 메고 있는 가방이 크다면 어떻게든 구겨 넣었을 테지만 어림도 없는 작은 가방을 메고 있다. “, 쓰레기봉투로 주세요.”쓰레기봉투에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랩으로 포장된 식자재들을 넣어서 가져 올 때면 그제 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박스에 넣어서 가져올 걸. 당장 오늘 먹을 것만 살 걸.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런 생활습관들을 쓰레기봉투에 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오르막길을 오르면 독거인의 사각큐브 집이 보인다. 주차장 옆으로 재활용쓰레기통이 넘친다. 혼자 살아도 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가도 문화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일회용에 관련된 다큐를 보고나서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심기일전, 내가 있는 곳부터 시작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집에 있는 까맣고 하얗고 로고가 새겨진 수많은 비닐봉투를 다 갖다버렸다. 그런데 이걸 다 갖다버리면 결국 이건 또 어떻게 되는 건가. 생각도 많아지고 마음도 불편했지만 있으면 계속 쓰게 되고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리는 건 더더욱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회용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을 보러 갈 때도 일회용품을 줄여보기 위해 반찬통을 가져갔지만 온통 포장된 것들뿐이었다. 가게에 포장지를 버리고 오거나 내가 집에서 버리거나. 어쨌든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들이었다. 유럽 어디에는 야채나 과일, 식자재들을 한꺼번에 무게를 달아 판다는데. 용기를 가져가야 살 수 있는 그런 곳. ,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다. 높은 이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은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텀블러를 챙기며 카페에 갔을 때 잔을 사용하고 빨대는 사용하지 않거나 손수건을 챙긴다든지, 비닐 사용을 최소한 하는 정도에서 습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에 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습관이 되기까지 쉽지 않다는 말이니까. 그리고 동네 친구(나보다 나이가 많다.)에게 들었던 놀라운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유치원 때 까지만 해도 시외버스나 공공기관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국가에서 장소를 제한시키고 흡연하는 것에 대해 법제화를 해나갈 때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력해 보고 싶다. 요즘은 일회용품 줄이는 것에 대해 법제화가 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문화로 확장해 나가려는 것을 지지하고 함께하고 싶다. 우리의 몸과 환경, 모든 생태계를 위한 일이 아닌가. 같이 잘 살자는 것. 이런 마음이나 행동에 관대해 지는 것. 유별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모두를 유리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니까. 나중이 아니라 지금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