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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함께하는 비전화공방/비전화수기

[비전화수기] 내 살림의 동반자-베이킹소다, 식초, 폐식용유 비누

내 살림의 동반자-베이킹소다, 식초, 폐식용유 비누

박소현 


나의 경우, 4년 전부터 나름대로 전기, 화학 물질을 줄이며 생활하기 시작했다. 계기는 불교 공부를 진지하게 시작하면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심지어 아주 작은 미물들끼리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배웠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갑자기 화장실에서 써오던 독한 합성 세제와 샴푸가 무서워졌다. 그것들이 주는 편리함에 비례하는 속도로 내 건강과 자연을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물을 정화할 때 액체 세제가 고체보다 생분해성이 낮다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성분들로 오염 된 물을 정화시키려면 그만큼 독한 뭔가를 다시 필요로 할 것이고 이건 악순환의 반복이 될 게 뻔했다. 더군다나 머리는 거의 매일 감아야 하는데... 알아차린 이상 적어도 내 스스로 끔찍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품을 찾다가 베이킹소다, 식초, 폐식용유 비누와 친해지기로 했다. 먼저 시범적으로 부엌과 화장실의 물 때 청소를 베이킹소다와 식초로 해봤는데 화학합성세제는 청소 내내 코와 머리가 아팠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았고 물때나 오염물질도 뽀드득하게 잘 닦여서, 게다가 가격도 착해서 만족스러웠다. 건강과 환경, 호기심 충족까지 13조 효과를 보았다. 그때를 기점으로 내 생활 속에서 환경과 몸에 나쁘다는 것들을 찾아내고 대체품을 찾아 실험하는 재미에 빠졌다. 다음 타자는 아주 어릴 적부터 머리를 감을 때 쓰던 샴푸와 린스를 바꾸는 것이었는데 이건 내게 맞는 방식을 찾을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터넷에는 다양한 방법과 수기가 있었다. 노푸는 지성 타입인 내 두피에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고, 어릴 적 교과서에서 옛 사람들이 비누와 식초 몇 방울을 이용했다는 걸 기억해내서 먼저 해봤다. 패기는 좋았으나 머리를 말려보니 빗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뻑뻑함과 빗에 묻어나는 비누 찌꺼기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한 일주일 동안 머리 안감은 애 같다며 놀리셨다. 적응기라서 그런가 싶어 며칠 더 해봤는데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포기하고 샴푸를 다시 써버렸다


그러다가 EM쌀뜨물 발효액으로 린스를 만들 수 있다는 포스트를 보고 제조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식초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며칠 째 힘들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발효액을 본래보다 훨씬 많이 물에 타서 헹구게 된 날! 드디어 샴푸와 린스를 썼을 때와 똑같은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발효액을 너무 적게 넣었던 게 원인이었다. 소주 반 컵~한 컵 정도는 부어줘야 머리카락에 남은 비누 여분을 완전히 분리해 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안심하고 샴푸와 작별을 고했다. 드디어 대략 3개월의 치열하고 외로운 실험을 끝내고 안착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그 후 지금까지도 샴푸 없이 잘만 살고 있다. 미끄덩한 느낌이 손과 모발에 오래 남는 샴푸와 린스를 쓸 때는 흐르는 헹굼 물을 엄청나게 사용했는데, 비누와 발효액을 사용하니 헹굼 시간과 물도 2배 줄었다. 덤으로 대야에 마지막 헹굼 물을 받아서 청소 때 사용하는 새로운 습관도 생겼다. 그렇게 몇 년 동안 Em 쌀뜨물발효액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다가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제조가 귀찮아서 식초 대용량을 사서 쓰고 있다. 식초도 발효액과 똑같이 소주 한 컵 분량 정도를 물에 희석 시켜서 시도해봤더니 통했다


지금도 식초와 베이킹소다, 폐식용유 비누는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들이다. 모든 청소와 머리감기 샤워까지 이렇게 해결하다보니 삶이 정말 단순해지고 돈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몇 달에 한 번씩 대용량으로 주문해두면 오랜 기간 동안 부엌과 화장실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향이 없는 아이들과 친해지다 보니 역으로 향에 꽤 민감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독한 인공 향에 파묻혀 살아왔는가.. 내가 파묻혀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늘 생활 속 친환경 라이프 노하우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걸 즐거워하고 소망했는데 4년 전만해도 오프라인에서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 유난 떤다는 불편한 시선을 받을 때가 많았다.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저마다 실천 사례를 서로 나누는 게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이 체감할 정도로 생태계가 무너지고 오염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활 습관으로 살아내고 싶고 그게 세상에 티끌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만족한다. 내가 뿌린 이 작은 씨앗이 언젠가는 나무가 되고 울창한 숲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