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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함께하는 비전화공방/비전화수기

[비전화수기] 삶의 모든 부분으로부터

삶의 모든 부분으로부터 

박예진

 

도시의 한 사람으로 존재하며 환경에 남기는 발자취를 zero로 만드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손만 뻗어도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이 투성이지요. 바쁘고, 즐길 거리는 많고 또 피곤한 도시 생활에선 ‘더 빠르고, 쉽고, 간편한’ 것들이 선호되기 마련입니다. 삶의 편의를 가져오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요. 이런 삶 속에서 ‘비(費)전화’ 라던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라는 말이 멀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TV에 나오는 유명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지요. “이것이 제가 지난 2년 동안 배출한 쓰레기의 양입니다”. 소량의 쓰레기가 담긴 물컵 크기의 유리병을 들고서 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고무적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말일 수도 있지요. “과연 저렇게까지 실천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려운 목표를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긴 여정을 떠난다 생각하고, 삶의 면면에서 환경에 발자취를 덜 남기는 선택을 하나씩 취해 나가면 됩니다. 조금씩 버릇을 들이다 보면, 처음엔 번거롭던 일도 자연스러워지기 마련이지요. 저도 긴 여정에 놓여있는 한 사람입니다. 한 번에 지치지 않기 위해, 작은 것부터 바꿔 나가고 있지요. 개인 생활에서 직업에까지, 약소하지만 출발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적어봅니다. 

 

편리함을 OFF 하다 낭비 문화에 한 몫 공조하고 있는 생활습관을 들춰보자면, ‘끊임없는 편리함의 추구’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더 쉽게, 더 빠르게’는 제품/서비스를 구매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요. 텀블러를 예로 들어볼까요? 사람들은 사은품으로 받은 텀블러를 신줏단지 모시듯 찬장에 꼭꼭 숨겨둡니다. 카페를 찾을 때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빨대까지 꽂아 음료를 마시면서 말이지요. 그리곤 쓰레기통에 플라스틱 컵을 버리며 매번 후회도 합니다. 그나마 자책감이 든다면 다행이지요. 생리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쓰고나서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면 될 것을, 굳이 면 생리대를 써서 물에 불리고, 빨래하고 삶아야 하는 과정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합니다. 2017년 발암 생리대 사건이 터졌을 때, 생리대 전 성분 표시와 여성 건강권 보장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지요. 그리고 면 생리대나 생리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안전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 생리대가 있다면 다시 사람들은 그것을 거머쥘 것 같았지요. (아마 대부분의) 우리는 일회용품이 문화로 자리 잡힌 시대에 태어났고, 편리함은 익숙하고 또 당연합니다. 내 건강, 안위가 중요한 것만큼 환경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것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입니다. 편리함을 버리고 내 시간을 조금만 내어주면, 땅속이나 바다에 흘러갈 쓰레기가 전혀 생기지 않는데도 말이지요. 면 생리대를 사용한 지는 3~4년 정도가 되어 갑니다. 늘 빨고 말려 쓰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 며칠 정도 넉넉히 사용할 수 있는 양을 구매했지요. 그래서 주기가 끝날 때쯤 한꺼번에 세탁하고 푹푹 삶습니다. 삶을 때 과탄산소다를 소주 컵 4/1 정도 넣으면 새로 산 것처럼 깨끗하고 뽀송해집니다. 

번거로울 것 같지만, 금방입니다. 유튜브 영상 몇 편 보는 시간에 끄떡없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리고 매달 생리대를 사는 지출도 줄고, 배출하는 쓰레기도 줄게 됩니다. 면 소재라 통풍도 잘되고 피부의 자극도 그만큼 덜합니다. 불편함을 조금만 감수했을 때 따라오는 이득이지요.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 생(生)이 다한 후에야 플라스틱 FREE 작년 7월부터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 중단을 선언하며 전 세계적으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이후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운동이 전례적 없이 일어나고 있지요. 얼마 전에는 ‘플라스틱 없는 7월(Plastic Free July)’이라는 캠페인이 SNS를 통해 퍼지기까지 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전해주는 영상이나 글을 모으면서, 제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을 돌아봤습니다. 샴푸 통, 화장품, 칫솔, 반찬통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아닌 것을 찾기가 어려웠지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욕실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나오는 샴푸 통은 고체형 샴푸 바로, 플라스틱 칫솔은 나무 칫솔로 말이지요. 아직은 시도치 못했지만, 지금 있는 튜브 치약을 다 쓰면 칡가루와 코코넛오일로 치약을 만들어서 쓰려고 합니다. 집에 남는 유리 용기에 담아서 말이지요. 단, 플라스틱으로부터 멀어지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직 멀쩡히 생(生)이 남아있는 플라스틱제품들을 몽땅 처분하지 않는 것이지요. 오로지 플라스틱 FREE에 동참하기 위해, 아직 몇 번을 거듭해도 더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것은 또 다른 과소비를 부르고 더 빨리 쓰레기를 만들게 됩니다. 아직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 있다면 몇 년이고 거듭해서 쓰고, 버려야 한다면 내용물을 깨끗이 씻고 라벨지를 벗겨서 분리수거해야 합니다. 비닐봉지가 있다면, 물로 씻어서 찢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더 사용합니다. 

 

직업 속의 전환 인터넷 사용에 있어서 한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검색엔진을 에코시아로 바꾼 거지요. 독일의 스타트업이 창립한 그린 검색엔진인데, 검색마다 발생하는 광고수익 일부를 나무 심는데 환원합니다. 45회의 검색마다 1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고 하지요. 나무 심기는 지역의 NGO를 통해 이뤄집니다. 업무 또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인터넷 검색에 더 나은 선택을 들여올 수 있다면, 그것도 작은 전환이 아닐까요? 또 다른 하나는 손님 맞기입니다. 저의 직업 특성상, 행사를 운영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준비할 거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쓰레기도 많이 생겨나기 마련이지요. 각자가 속해 있는 단체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에 따라 ‘환경’이라는 존재감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맡은 일에서는 환경적 영향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환경단체에 소속된 분들 만큼은 못 미치겠지만요. 행사의 주최자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손님들에게 개인 컵을 가져와 달라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사용 가능한 컵을 늘 배치해 둡니다. 행사장에 오는 손님에게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는 것도 탄소배출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없어도 그만 일 것 같은 인쇄물은 제작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만들 때, 이것이 의례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생산물은 줄일 수 있지요. 꼭 필요한 것이라면 되도록 재사용 가능한 형태로 제작합니다. 예를 들어, 엑스 배너 같은 것은 일회성 행사를 위해 제작하기보단, 되도록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특정 날짜나 행사명이 들어가지 않게 만듭니다. 물론 엑스 배너 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환경적 실천은 아직 무궁무진합니다. 그만큼 고쳐 나가야 할 부분도 많다는 얘기지요. 편리한 문화가 상용화된 사회에서 ‘환경에 더욱 나은 선택을 하는 것’에는 한계와 어려움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개개인의 ‘불편을 감수할 용기’만이 환경 중심의 문화를 점증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장 안의 텀블러를 꺼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면 그만큼 공장을 덜 돌려도 되고, 화학물질 쓰레기를 덜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삶은 비전화와 제로 웨이스트, 화학물질 없는 삶에 더 가까워집니다. 사기 전에, 버리기 전에, 집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 살아감에 있어, 내가 남길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적 발자취를 남기며 사는 것이 나와 우리 그리고 앞으로 지구를 살아갈 모든 이들을 위한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