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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비전화공방 현장연수/사업단

일본 비전화공방 연수일지 2017.2.14. from 단디

2017.2.14. from 단디


오늘은 작업을 쉬는 날이어서 후지무라 센세와 하루 종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일본어는 오이시!(맛있어요!) 정도 밖에 못하고 영어도 어설픈 제가 후지무라 센세와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제가 생각해도 신기하네요. 그건 아마도 제작자로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대해 서로가 비슷한 종류의 경험이 있고 세상의 바라보는 시선과 일상의 결이 닮아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일 처음 이야기 나눈 주제는 비전화냉장고였습니다비전화공방에서 가장 유명한 발명품 중 하나지요후지무라 센세는 비전화냉장고의 원리와 제작방법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어요비전화공방에서 만들어 낸 비전화냉장고는 사실 현재의 전기냉장고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후지무라 센세도 전기냉장고를 함께 사용하고 있을 정도니까요하지만 비전화냉장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우리의 삶속에서 냉장고가 어떤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복사냉각의 원리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비전화냉장고 



저는 트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이사를 도와준 경험이 많습니다이사를 할 때 마다 가장 옮기기 어려운 물건이 바로 냉장고입니다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거운 살림살이가 바로 냉장고입니다냉장고는 어쩌다가 이렇게 거대해졌을까요제가 어릴 때만 해도 한 가정에서 쓰는 냉장고는 어른키보다 조금 작은 냉장고 하나였습니다그런데 요즘은 거대한 양문형 냉장고는 기본이고 거기에 작은 보조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까지 해서 한 집에 보통 2~3개의 냉장고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리고 현대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식품을 냉장고에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바나나토마토양파감자고구마 등은 냉장고에 보관하면 더 빨리 상하게 되는데도 무조건 냉장고에 모조리 집어넣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뭐든지 냉장고에 넣어두면 더 신선할거라는 맹신이 생긴 거지요냉장고가 점점 커져갈수록 음식물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발전해온 인류의 소박한 지혜들은 점점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비전화냉장고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일반적인 전기냉장고처럼 사용하기에 편리하지도 않고 저장공간도 작고 강력한 냉장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냉장고에 꼭 넣어야 할 것과 넣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될 것이고, 냉장고에 넣지 않고 식품을 보관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도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냉장고에 음식을 잔뜩 쌓아두고 사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지도 모릅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냉장고는 단순히 전력소비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음식문화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음식문화가 나오게 된 사회적 구조와 시대적 흐름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만드는 물건들이 그저 고상한 미적 취향이나 삶의 편리를 만족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단단하게 굳어져버린(그래서 이것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삶의 잘못된 습관들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는 것이 되기를. 그런 작은 균열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내 삶에 대해,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성찰의 범위를 넓혀가고 싶습니다. 그런 방식은 느리지만 조화롭고 오래갑니다. 머릿속의 철학이나 이념에서 시작하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실제로 만져지는 내 손끝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게 저처럼 소심하고 소박한 제작자의 역할입니다.    









후지무라 센세



 키키짱. 사람으로 치면 할머니정도의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