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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공방철학

일본 비전화공방에서 제자로 보낸 한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본 비전화공방에서 제자로 보낸 한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김유익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다국적 컨설팅기업 소프트웨어 회사에 근무하면서 금융기관을 위한 프로젝트 관리자 일을 하다가 2012년 한해 동안 일본비전화공방에서 제자생활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2013년 6월부터 하자센터 작업장학교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상하이에서 和&同 Harmony &Equality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제자생활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인생에 좋은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올 것 같지 않아서


2012년 한해 동안 일본 곳곳에서 모여든 20-30대 젊은이 세 명과 비전화공방에서 후지무라 선생의 제자가 되어 함께 보냈습니다. 한국인으로 가장 잘 섞일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는 내가 비전화공방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는 조금 독특합니다. 한국 기업문화가 싫어 10년 넘게 아시아 곳곳을 옮겨 다니며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가운데 마지막 도시였던 도쿄에서 한국 NPO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에게서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주제에 동참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권고를 받고, 일본에서 비전화 철학 확산운동에 여념 없으신 후지무라 선생의 공방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공방 견학, ‘지방에서 자리를 만들기 위한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문하생으로 들어와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죠. 부양가족이 없어 몸이 가벼웠던 탓에 별다른 고민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1년 동안 공방생활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10년 정도만 더 돈벌이를 하고 50대 초반에는 제2의 일을 시작해보자라는 계획을 조금 앞당긴 것뿐이었습니다. 인생에 좋은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함께했던 명랑한 일본 젊은이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주택 자재를 납품하는 기업에 1년 남짓 다니다 숨막히는 기업문화에 질린 오키나와 출신  ‘토모짱’모든 것을 전기로 작동하는 올(all)전기 주택이 편리한 미래형 주택이긴 하지만 그 편리함이 후쿠시마 사태를 일으킨 핵발전소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전화공방을 찾은 명랑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 라디오, 생협, 여행사와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자급자족 생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비전화공방의 문을 두드린 ‘나고야’와 가자와 출신의 ‘나나’, 고스기 커플. 이렇게 3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제자생활을 소개하자면, 자립자족자립생활의 기초 지식을 쌓고 경험하는 과정


비전화공방의 제자생활은  자급자족자립생활의 기초 지식을 쌓고 경험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더불어 비전화공방을 찾는 뜻이 맞는 수많은 분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집짓기, 농사, 요리와 청소, 날마다 닭모이 주기, 가을엔 감 따서 말리거나 겨울철 장작을 패는 것과 같은 시골생활의 온갖 몸 노동을 경험하는 것이 한 축이고, 창고를 고쳐 만든 숙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경험해보는 것이 다른 한 축입니다. 후지무라 선생이 하나하나 발명한 비전화기술은 비전화 철학을 구성하며, 이러한 삶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조금 보태기 위한 힌트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도구 사용법이나 자세한 농사 기법, 자립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어쨌든 필요한 어느 정도 현금을 벌기 위해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3만엔 비즈니스는 공방보다는 이후 자신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기 위해 성취해야 하는 수단입니다. 


공방생활에서 즐거웠던 순간들


영 손재주가 없어 집짓기 작업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했던 나는 자급농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규모였지만 곡식과 채소를 스스로 키워 요리해 먹는 일이 공방생활 가운데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침마다 음식찌꺼기를 골라 닭들에게 모이를 주니 시선한 계란을 아침마다 먹을 수 있었고, 또 남은 음식찌꺼기는 퇴비로 만들어 밭에 사용했더니 큰 수고 없이도 신선한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일이 서툰 나를 대신해 더 많은 일을 떠맡아야 했던 동료들에게 휴일마다 숙소에서 밥을 지어 주는 것이 큰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고 정한 것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음식이나 물건을 공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공방은 해가 지면 서늘해져서 열대야 걱정은 없는 시골이기도 했지만, 선풍기를 포함해서 별다른 냉방기구 없이도 습하고 무더운 나스의 여름을 견딜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힘은 동료들 사이의 나눔 덕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백미는 일과가 끝나고 잠들기 전에 마시는 맥주였습니다. 맛있는 맥주를 좋아하고, 무엇이든 돈 주고 사기보다는 스스로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나쨩은 몰트캔으로 판매하는 맥주원액과 효모를 구입해 다른 제자들, 이웃 주민들과 함께 맥주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비전화공방서울 제작자 1기


처음엔 맛좋은 맥주를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날마다 잠깐씩 노래 한곡을 곁들인 잡담을 나누며 즐기는 맥주의 맛은 공방 생활의 백미였습니다. 물론 숙소 앞 비전화 목욕탕에서 겨울이면 쓰레기와 장작으로 데운 따뜻한 물에, 여름엔 시원한 찬물에 순서대로 몸을 담그고 나온 뒤에 마시는 맥주여서 더 맛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몸노동으로 자연의 생산작업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던 공동체 생활의 기쁨


비전화공방에서 보낸 도제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자급자족자립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몸노동으로 자연의 생산작업에 참여하는 자랑스러운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비와 바람, 지렁이, 부드러운 토양, 이름 모를 벌레들, 짐승들이 함께 작은 씨앗을 보기 좋은 채소로 키워내는 과정에 내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습니다. 비전화 도구는 기발한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전기를 사용하는 대신 우리가 몸을 움직여 좋은 도구로 일할 때 얻는 기쁨을 알게 하는 전전화前電化 도구이기도 합니다. 전통의 지혜에 이미 많은 부분 반영이 되어 있으나 우리가 어느 사이엔가 별다른 생각 없이 약간의 수고를 핑계로 버린 것들입니다. 이를테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실은 소음이나 미세먼지 같은 더 큰 불편을 가져올 수 있는 진공청소기 대신 잘 만들어진 싸리비로 바닥을 쓸 때 느끼는 기분 좋은 반동의 리듬을 느껴보는 것과 같습니다. 비전화 도구를 사용하는 수고는 어느새 즐거운 참여행위가 되는 것이죠.




이보다 더 즐겁고 아름다울 수 없는 삶, 비전화공방


후지무라 선생이 비전화 철학을 잘 전달하기 위해 늘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보다 더 예쁠 수 없는’분위기입니다.  전기를 적게 사용하고, 어느 정도의 불편은 달게 받아들이면서, 몸을 많이 사용하고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다 보면 더 큰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비전화공방은 비전화 기술, 자급자족자립하는 삶, 자신의 운영을 거대 자본주의 구조에 맡기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귀농귀촌을 권장하는 후지무라 선생의 비전화 철학이 응축되어 있고,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일본의 한적한 시골마을 나스에 있는 비전화공방은 공방엘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비전화 생활, 구질구질하고 누추한 시골 살림이라는 선입견이나 이미지를 갖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월간<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3년 7월호에 실린 김유익의 글을 필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