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전화공방서울/비전화공방서울_꾸리기

비전화스러운 사무실 꾸리기

제일 왼쪽이 글쓴 하루 ;-) 책상 정리가 되고나서 간식타임! 




몇 일째, 텅 빈 사무실을 보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이랑 의자라도 빌려보자는 생각에 서울혁신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공상과 둘이 낑낑대며 테이블 2개와 의자 5개를 카트에 실어놓고, 테이블과 의자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생각보다 무거운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실은 카트는 끌고 가는 내내 시끄러웠다. 계속 떨어지는 의자를 붙들며 드디어 우리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힘을 썼더니 기운이 빠졌다. 나는 공상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했고, 공상은 나에게 커피를 사줬다. 따뜻한 커피에 몸과 마음을 녹이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흔쾌히 빌려준 혁신센터도 고맙고, 단장님인 공상이 저렇게 기뻐하며 옮겨주고 커피까지 사주는 것이 고맙고, 아무 것도 없는 사무실에 불평 한 마디 없는 동료들이 고마웠다. 그렇게 빌려온 캠핑용 테이블 2개와 의자 5개가 비전화공방서울 사무실 꾸리기의 시작이었다.  



전기를 안 쓰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늘리는 방식으로 

우리는 며칠 동안 서울혁신파크 곳곳을 배회하다가 테이블과 의자가 생겨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업무를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추위가 우리를 덮쳤다. 출근한 지 30분이 지나도 누구도 온풍기를 켜지 않았다. ‘비전화’라는 이름을 단 순간, 묘한 죄책감이 생겼다. “온풍기 일부로 안 틀고 있는 거야?” 우리 중에 그나마 용기 있는 톰이 물었다. “좀 그래서요. 근데 너 무 추워요.” 재은과 내가 동시에 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냥 틀자” 톰이 말하자, 우리는 뛸 듯이 기뻐하며 “네!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불은 켜지 않았다. 2월 해는 일찍 저물었다. 사업단의 퇴근 시간은 7시, 불을 켤 수밖에 없었다.


온풍기와 불을 켜고 나니, 다음에 필요한 것은 마실 물이었다. 2월 아직 쌀쌀한 날씨에 온풍기를 틀어도 사무실은 추웠다. 몸을 녹여줄 따뜻한 물이 필요했다. 시골의 생활공간으로써 일본비전화공방은 화목난로로 물을 데웠지만, 비전화공방서울 사무실 안에는 화재경보기가 달려 있었다.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우리 만에 타협지점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우리의 타협점이 다양한 사람들이 비전화로 연결되는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온정수기같이 당장 전기를 써야 하는 것은 쓰면서 천 천히 안 쓸 수 있도록 바꿔나가기로 했다. 


요즘 비전화공방서울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비전화가 뭐냐고 묻는다. 전기와 화학 물질 없이 풍족하게 사는 것이라 답하면 모두 놀라며 이렇게 되묻는다. “전기를 안 쓰고 살 수가 있어요?” 사람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이 시대에 전기를 안 쓰는 생활은 상상 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심 한복판에 비전화공방서울을 짓는 우리 일은 전기를 안 쓰는 것 이 아니라 전기를 안 쓸 수도 있는 선택지를 늘리는 일이다.



당장 필요한 것부터 자원이 적게 드는 방식으로 

사실 사무실을 꾸리는 일은 업체에 전화해서 결재만 하면, 몇 일내로 뚝딱 끝날 일이었다. 물론 우리가 할 일도 없다. 전화 몇 통으로 아저씨들이 몇 번 오고 가면, 사무실이 채워질 터였 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아직까지 텅 빈 사무실에 있게 된 것은 아직은 낯선 '비전화스러 움'을 논하는 자리에서 사무실부터 비전화스럽게 꾸려야 한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전화스러운 사무실을 꾸리기 위한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찾은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효율화였다. 자원의 효율화는 자원을 애초에 적게 들이는 것을 고민하고, 적은 자원으로도 풍족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돈으로 사면서 생략되는 과정의 즐거움과 자기 삶의 자립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스스로 하게 되면 두 번째는 저절로 발견하게 될 터였다. 우리는 당장 필요한 것부터 자원이 적게 드는 방식을 찾아 나섰다.


자원을 적게 들이는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방식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사람들이 안 쓰는 가구를 구해보고, 얻어지지 않는 것들은 중고가구를 들이기로 했다. 새 제품을 구매하는 건 마지막에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먼저 안 쓰는 가구를 얻기 위해 우리는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톰이 청년허브에서 책상을 얻었다. 책상을 가지러 가보니 원목책상이라 우리가 들고 옮길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당황하던 그 때 단디가 적정기술랩에 전화를 하더니 트럭을 빌려왔다. 비전화공방이 궁금해서 찾아오신 공상의 지인들이 책상 옮기는 것을 도와주셨다.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우리는 모두의 도움을 받아 책상이 생겼다. 책상을 다 옮기고, 따뜻한 온풍기 바람에 몸은 노곤노곤 했지만 마음은 풍족했다. 



적은 자원으로도 충분히 풍족하게 

안 쓰는 가구를 구해보았지만, 얻어지지 않는 것들은 중고가구를 들이기로 했다. 을지로와 황학동 가구거리를 둘러보며 중고의자와 캐비닛을 샀다. 중고의자는 2.5만원에 살 수 있었다. 망하는 카페가 많아 싸게 매입해서 파신다고 했다. 마음이 씁쓸했다. 누군가 망해서 헐값에 넘겨야 했던 가구를 싼 값에 샀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캐비닛은 꽤 크고 묵직하고 튼튼했다. 색도 톤 다운된 청색이 빈티지스러웠다. 많은 중고 제품 중에서 목석을 가려내는 일은 꽤 즐거웠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와 배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용달’이라고 불리는 배송은 아저씨 한 사람만 오기 때문에 함께 옮겨드렸다. 가구업체에서 배송비만 주기 때문에 인력을 붙일 수 없다고 하셨다. 무거운 캐비닛과 의자를 나르기에는 아저씨 혼자서는 버거워보였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사무실이라 재은이 급하게 믹스커피를 빌려와서 아저씨께 대접했다. 용달아저씨가 떠나고 사무실에 남아 중고의자와 캐비닛 사진을 찍었다. 많은 중고가구 속에서 직접 맘에 드는 것을 고른 만큼 애정이 더 생겼다. 직접 고른 중고가구 사진을 여기저기 자랑 하면서 우리는 퇴근했다. 더디고 품이 드는 일 방식에서 내 옆에는 항상 동료들이 있었다. 혼자 하면 그냥 고생스러운 일이다. 같이 고민하고 고생과 기쁨을 나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이 진짜 과정의 즐거움이었다.


사무실을 꾸리는 일은 돈을 쓰면 정말 간단하고 편한 일이다. 그런데 편한 일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비전화스러운 사무실을 꾸리기 위해 우리는 돈 대신 품을 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중고가구를 사러 다니면서, 새 제품을 샀으면 몰랐을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안 쓰는 가구를 얻고 옮기기 위해 우리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했다. 돈을 들이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자 사람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과정을 스스로 만들 어가는 일은 다시 관계를 맺는 삶의 방식을 되찾는 일이었다. 삶의 자립력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 포괄한다. 자원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오히려 풍족한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글에 나오는 사람들    

강내영(공상)   우민희(히루)

이재은(재은)   성배경(단디)

김미경(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