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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비전화공방 현장연수/제작자1기(2017)

#1. 비전화제작자들의 일본 비전화공방 소식, 첫 번째

히덴카코보에 간 제작자들, 첫 번째 이야기

히덴카코보(非電化工房)비전화공방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비전화공방은 히덴카코보, 서울의 비전화공방은 비전화공방서울로 표기했습니다.


 

2017.07.03. 첫째 날

서울에 장맛비가 시작되는 날 아침, 일본으로 출발했다




도착한 일본도 장마기간이다. 비가 오고 습하고 덥다. 게다가 온통 풀과 나무와 꽃으로 덮인 히덴카코보에는 진디응애, 일본어로 부요가 산다. ‘부요는 잠깐 사이에도 살을 뜯어 상처를 낸다. 그리고 미친 듯이 가렵고 부어오른다.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다.) 나스에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부요에게 살을 뜯기고 상처가 났다. 피가 맺혀있는 상처를 보며 우리들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중얼거렸다. 그때 후지무라 센세는 이치, , , ..” 숫자를 세며 작은 그릇에 담긴 소금물로 상처부위를 100번 문질러주셨다. 16일의 나스 생활이 시작되었다.


히덴카코보에는 후지무라 센세, 부인 유리코상, 아들 켄스케상, 제자 유카상과 소헤이상, 강아지 무크, 닭 키키, 염소 페터가 살고 있다. 피아니스트였던 유리코상은 보름달이 뜬 날 밤, 거실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했고 그 순간 모두가 숨을 멈추었다. 지난 5월 서울에 방문해 방사능 이론과 측정을 강의해준 켄스케상은, 방사능 측정 실습을 진행해주었다. 유카상은 자연 속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숲 학교에서 일했었고, 나중에 일본식 전통 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유명한 중장비 회사에서 일하다 히덴타코보에 들어온 소헤이상은 트럭 모바일 카페를 만들 예정이다



유리코상의 연주


후지무라센세와 유리코상


사진을 보고 제일 왼쪽이 유카상


소헤이상



천방지축 강아지 무크와 자유로운 11살 닭 키키는 집 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덕분에 동물을 무서워하는 제작자는 밥을 먹다말고 의자 위로 올라가서 발을 동동 구르곤 한다.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 염소 페터는 울타리 문을 열어주자마자 튀어나가 마음대로 풀을 뜯고 다닌다. 목줄을 잡은 제작자는 페터에게 산책당하는 모양새로 끌려다니기 일쑤다.


무크 


키키



2017.07.04.-2017.07.05. 둘째 날과 셋째 날


드디어 히덴카코보의 카페, 스트로베일하우스, 왕겨하우스, 트리하우스 등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서울에서 사진으로 봤지만, 직접 보면서 구조와 제작방식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훨씬 이해가 쉬웠다. 무엇보다 그 공간의 감성이 직관적으로 느껴져, 그동안 센세가 강조하셨던 아름다움감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비전화카페, 그리고 페타 




나는 특히 트리하우스에 반했다.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높은 나무 위에 올려져있는 작은 집에 올라가면, 콸콸 흐르는 계곡물과 무성한 푸른 나뭇잎, 파란 하늘만 보인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트리하우스는 너무도 매력적이다. 아침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지고, 문을 열면 새소리와 물소리가 귀를 채운다한명이 다리를 쭉 펴기 어려운 작은 공간은 제작자들의 인기 숙소가 되었다.


트리하우스



2017.07.06.-2017.07.07. 넷째 날과 다섯째 날


서울에서는 트랙터, 포크레인 등의 기계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히덴카코보에서의 트랙터와 포크레인 일정을 기대하고 있었다. 밭을 가는 트랙터는 수동 차를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4륜 구동이고, 좌우 브레이크가 달려서 각각의 바퀴를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뒤쪽에 달린 로터리의 높낮이를 조절해서 밭을 간다. 히덴카코보에 있는 두 대의 트랙터는 고장나도 자가 수리할 수 있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포크레인은 땅을 파거나 흙을 밀어내는 기계이다. 대부분 처음 하는 운전이지만 열심히 배우고 즐겼다. 마치 소풍 온 것만 같았다. 비전화공방서울에서 우리는 삽으로 땅을 파고 두둑과 고랑을 만들었었다. 기계의 힘이 엄청나고 편하기도, 위험하거나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비전화공방은 전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하는 부분에서는 적절하게 사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여러 번 갈아 폭신폭신해진 흙에 메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다. 이 메밀이 자라서 수확할 때는 9-10월쯤, 가을이 될 것이다. 그 때쯤이면 히덴카코보 식구들은 알록달록 단풍이 비치는 호수를 보며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고 있지 않을까.





히덴카코보에서의 하루들


우리는 농업기술, 목공/금속/건축기술, 3만엔 비즈니스 등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술을 배우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다. 기술이나 소비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삶,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밭의 풀을 뽑고 따온 작물로 아침을 해먹는 삶, 해먹에 누워 늦은 오후의 하늘을 즐기는 삶, 어떤 높은 빌딩에도 시야가 가리지 않고 밤의 검은 나무와 달을 볼 수 있는 삶, 밤에는 네온사인이나 지나친 조명 없이 컴컴한 어둠을 만날 수 있는 삶, 그 속에서 작게 반짝이는 반딧불을,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만나는 삶, 목욕을 하기 1-2시간 전에 미리 불을 피워 목욕물을 데워놓는 삶.


히덴카코보에서 어떤 삶의 모습을 만나는 중이다. 비록 낡고 불편하고 도시의 강박적인 위생도 없으나, 삶에서 잊고 있거나 잊어야만 했던 모습들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반짝임과 아름다움은, 부요에게 물린 상처에 100번 동안 소금물을 문지르는 수고를 감내할 만하다





글쓴이 : 비전화제작자 1기 모로

(모로. 여러모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살피고 보듬어 주는 따뜻하고 사랑스런 모로

함께 있으면 속 깊은 얘기를 하게 만드는 편안함을 주는 모로. _by 수미마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