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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함께하는 비전화공방/비전화수기

[비전화수기공모] 작은 일들이 언젠가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길 / 안정화

비전화수기공모



작은 일들이 언젠가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길

안정화


6시면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선 압력밥솥에 저녁을 준비합니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한 번에 꺼내고, 제철채소들로 상을 차려 밥을 먹습니다. 보온을 켜놓으면 계속 전기를 잡아먹는다는 전기 압력밥솥은 처음 우리 집에 올 때 들어있던 종이상자 안으로 다시 들어가 있습니다.


벌써 4년전입니다. 서울에서 쓰는 전기를 위해 밀양에 송전탑을 세운다고 쫓겨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이가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다가 한 달간 전등을 켜지 말고 생활하기로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전기를 아끼는 효과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일상의 불편함을 통해 밀양의 상황을 잊지 말자는 의미가 컸습니다.



방에 촛불을 켜놓고도 화장실에 들어가며 무의식적으로 불을 켜기를 수차례, 태양광 전등을 충전하느라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눈가리고 아웅처럼 핸드폰 후레쉬를 이용하기도 하고 그렇게 둘이 약속한 한 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약속한 날이 지나고 저희는 불을 얼른 켰습니다. 광명을 되찾은 것입니다. 전기 요금은 4천원 가량 줄었다고 고지서가 나왔습니다.



촛불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전기를 좀 더 아껴 쓰고 있습니다집에 있을 때는 가능한 적은 수의 전등을 켜고 한 공간에 함께 있습니다. 쓰지 않는 전기 제품들은 멀티탭을 꺼놓거나 코드를 뽑아 놓고요. 새로 전기제품을 사지 않으려고 많이 고민을 해보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결혼할 때는 동네에서 작은 크기의 중고냉장고를 구매했어요. 세탁기는 소형으로 구매하고 이불빨래는 동네에 있는 코인세탁소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시골에 내려와서 이불빨래는 다라이에 발로 밟아 빨거나 햇볕에 일광소독하는 걸로 대신하곤 합니다. 냉장고가 하나 더 필요하게 되어 중고를 엄청 알아보다 시골의 작은 선택지를 견디지 못하고 새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최대한 우리에게 딱 필요한 크기로.


도시에 살 때는 원룸에 작은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 세면대 밑에는 대야를 두고 온수가 나오기 전의 냉수나 머리 감은 마지막 헹굼물 같은 깨끗한 물을 받아두었다가 화장실 사용 후 부었습니다. 지금은 오줌액비를 만들기 위해 오줌을 따로 모으고 있어 화장실에서 물 사용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허드렛물이 아니라 싱크대 허드렛물을 따로 모아 밭에 주고 있어요. 야채 씻은 물, 설거지 마지막 헹굼 물을 통에 모아두었다가 사용합니다.


설거지 할 때 세제는 결혼 후 집들이 선물로 잔뜩 받은걸 아직도 사용 중입니다. 선물 받은 것이 다행히 생협제품이라 잘 쓰고 있습니다. 세제에는 물을 반쯤 섞어 연하게 사용해도 거품이 잘 나서 사용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기름기가 없는 그릇은 물과 수세미 혹은 베이킹소다를 써서 설거지를 합니다. 행주를 삶을 때는 물을 따로 끓이기도 하지만 병조림을 위해 병을 삶고 남은 뜨거운 물이 생길 때 냉큼 넣고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수소를 넣고 담궈두었다가 주물주물 빨아 널어요.


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이라 추운 날이면 난방을 켜는 대신 유리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끌어안고 잡니다. 이불 속 두 사람 사이에 병을 놓으면 새벽까지 온기를 느낄 수 있어요. 예전보다 화장품 개수도 많이 줄었고, 선크림이나 특수 기능성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3월 시골에 내려와 우리가 먹을 것들을 소소하게 농사 짓고 있습니다. 도시에서와는 또 다른 삶의 방식에 좌충우돌 하고 있지만 최대한 에너지와 화학물질을 적게 쓰기 위해 고심하고도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비닐도 사용치 않습니다. 밭을 갈거나 만드는 일도 기계의 도움 없이 사람과 자연의 힘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하나가 자랑하듯 늘어놓게 되는 작은 일들이 언젠가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길. 멈추지 않고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되길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