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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수기공모] 나와 전기 / 이민수

비전화수기공모



나와 전기

이민수

 

1인 세대주인 나는 한달에 전기를 40kWh 남짓 쓴다. 작년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대국민 선물과도 같은 요금제 개편으로 올해는 전기요금을 낼 기회조차 많지 않다. 참 더웠던 지난 여름 나의 8월 전기요금은 1920원으로 사용량이 50kWh 정도 되었다. 한전은 청구금액이 2000원 미만인 경우 청구서를 보내지 않기에 요즘은 보통 두 달에 한 번 청구서를 받는다.



한전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월 100kWh 이하의 전력을 쓰는 가구는 전체의 18.8%(4.36백만 가구)이라고 한다. 폐쇄적인 공기업답게 한전은 보다 상세한 사용량 통계를 밝히지 않아 전체 분포에서 나의 위치를 알 수는 없다. 다만 통계 일반론으로 추정하건대, 또 지인들이 나의 전기요금을 듣고 놀라는 경험에 비춰보건대 나의 전력 사용량은 절대적으로 볼 때에도 낮은 수준인 것 같다.


나에게는 남들보다 전기를 적게 쓰는 노하우가 있는가? 사실은 잘 모르겠다. 집에 가전제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에어컨도 있고 헤어드라이어도 있고, 냉장고 세탁기 PC모니터 전자레인지 커피포트도 있다. 평소에 전기를 아껴야겠다고 새삼 생각하는 경우도 없다. 더구나 올빼미 타입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내가 전기를 이 정도

쓰며 지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전력 사용을 아끼려고 별스러운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전기를 포함해 모든 에너지 사용은 개인의 생활습관에 철저히 결부되어 있다. 먹고 씻고 놀고 머물고 이동하고 미디어를 즐기는 등 현대인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 소비를 수반한다. 더구나 그들 경험의 질은 대체로 에너지 소비량에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보통 에너지 다소비와 같은 방향을 가리키게 된다.


그렇기에 에너지 사용패턴을 바꾸고 새로운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매순간 불편해질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전기 절약의 경제적 유인은 매우 낮다. 지구 보호, 환경정의 실천 따위의 추상적 가치를 붙잡고 명백한 일상의 불편함 내지 삶의 질 저하를 감수하겠다는 개인의 결심이란 너무 작위적이어서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다만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밝은 실내조명이 부담스럽고, 3층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어색하고, 텔레비전에 관심이 없고, 에어컨 바람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훈육의 철학, 개인적 관심분야와 학습경험 등의 결과, 나는 성인이 될 때쯤부터 자원 낭비에 민감해지는 성격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똑같은 일을 보다 적은 자원 투입으로 해결할 때의 쾌감을 즐기게 되었다. 김생민이 영수증 놓고 고민하듯, 여러 자원의 출처와 연원, 그 효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쾌감을 얻을 기회도 굉장히 많다. 그것을 즐기는 가운데 어느덧 나도 모르게 전기를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주장을 보충하는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기 어려운 것을 보면 나 스스로도 왜 어떻게 전기를 덜 쓰며 살 수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가 전기를 덜 쓰며 살도록 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기성세대로 하여금 전기를 덜 쓰며 살도록 하는 데 드는 에너지보다 훨씬 적게 들 거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