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 내자!

- <사람의 부엌> 류지현 작가와 만남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요리는 뭘까? 각자 다양한 요리를 상상하겠지만, 내겐 ‘카레 1인분’이다. 서울에서 식재료를 1인분만 사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다. 보관 방법을 잘 모르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만 투철하다. 한 솥 끓여둔 카레에 질리면, 외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렇게 먹어도, 먹어도 냉장고 속 감자는 파랗게 질려간다. 장기여행을 갈 때도 냉장고 플러그를 뽑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뜨끔했다. 플러그를 뽑는 순간, 음식이 썩기 시작할 거라는 불안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불안 때문에 늘 모든 식재료를 냉장고에 보관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가지도 감기에 걸려요.

가지는 따뜻한 나라 인도에서 왔거든요.”


<사람의 부엌>의 저자인 류지현 작가가 비전화공방을 찾았다. 그녀는 모든 식재료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생활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냉장고에 들어가면 냉해를 입는 과일이나 채소가 있다. 더운 나라에서 온 가지가 그렇다. 사람이 추우면 감기에 걸리듯, 채소도 추우면 감기에 걸린다. 사람처럼 채소도 체질이 다 다르다. 그녀의 이탈리아 친구는 “냉장고에 들어간 토마토는 도화지 맛이 난다”고 말했다. 토마토는 냉장고에 넣으면 상하는 대표적인 채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냉장고는 ‘만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식재료를 사고, 판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냉장고 안에 켜켜이 음식이 쌓이면, 눈에 닿지 않는 것들은 쉽게 잊힌 채 부패한다. 있는 줄도 몰랐던 식재료가 상한 걸 발견하고 놀라는 일이 반복돼도 개의치 않는다. 아깝지만 다시 사면 그만이다. 결

“손도 안 대고 버릴 음식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전기를 가동하여 보관하는 셈이다.”(류지현, <사람의 부엌>) 그렇게 전 세계의 음식의 30%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런데도 여전히 열 명 중 한 명은 기아에 허덕인다. “매년 버려지는 13억 톤의 음식물 쓰레기는 3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라는 건, 만약 지구가 하나의 기업이라고 가정한다면 결코 두고 볼 수 없는 손실이고 적자잖아요.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주식회사는 곧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고 그녀는 말한다.


지난 5월 비전화공방을 찾은 류지현 작가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 떠난 여행


우리가 그토록 맹신하는 냉장고가 만들어진 건 불과 107년 전이다. 그녀는 “냉장고가 없던 시간이 인류에게 더 익숙하다”고 말한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장소지만 예전에 부엌은 생명을 관찰하고, 그 관찰을 지혜로 터득하여, 대화를 통해 다음 세대에 전수하던 장이었다. ‘눈과 손, 귀, 피부로 경험하는 이 평등한 지식들’이 사라지는 게 그녀는 못내 안타까웠다. 그것이 7년 전 그녀가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 나선 이유였다.


그녀가 인터뷰한 한 노인은 “냉장고 대신에 냇물이 바닥 아래로

흐르는 작은 방을 사용하곤 했다”고 한다.


파리의  ‘가르드 망제’라는 찬장. 외부와 내부 공기의 온도 차에 의해 더 차가운 공기가

안쪽으로 들어오는 원리를 이용한 보관 방법이다.


잎채소를 냉장고 밖에 보관하던 농장의 창고. 수분만 충분히 공급해주면 냉장고 밖에서도 보관할 수 있다. 그녀는 이 농장에서 염소 고기는 냉장고에, 채소는 냉장고 밖에 보관하는 걸 눈여겨 봤다고 한다. 전통과 현대의 방식이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3년여 동안 세계 곳곳의 부엌과 텃밭, 크고 작은 농장과 공동체를 찾아다녔다. “그분들이 생각할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얘기하게 하거나 발견하기 위해 수다를 떨었어요. 진정한 지식은 직선 문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녀는 ‘겹겹이 쌓인 삶의 한복판에서만 구할 수 있던 이야기’들을 모아 ‘지식의 선반’을 디자인했다. 선반 하나하나에는 그녀가 그동안 수집해온 냉장고 없는 부엌의 노하우가 담겨있다.


 류지현 디자이너가 만든 ‘지식의 선반’. 식재료 각각의 특성을 이용해 보관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어둠을 좋아하는 감자를 위한 서랍장, 그리고 그 위에 사과를 두는 선반이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사과의 에틸렌 가스가 감자의 노화를 늦춰 준다는 지혜가 담겨있다.



부엌의 리듬

‘지식의 선반’은 식재료가 한눈에 보인다. 식재료들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사과가 눈에 띄는 곳에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생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이 사소한 알아차림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무조건 냉장고를 사용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삶의 리듬이 냉장고에 맞춰진 건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냉장고라는 기계에 모든 걸 떠맡겨 버렸죠. 눈에 보이면 ‘이제 저걸 먹어야 하는구나’ 생각할 텐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쉽게 외식하러 나가잖아요? 냉장고가 편리함뿐만 아니라 심리적 부담감까지 해결해주는 거죠. 당근이, 감자가, 호박이 시간과 환경에 따라 인간처럼 쇠해 가는 생명이라는 것을 느낄 겨를이 사라졌죠. ‘생명의 리듬’이 아닌 ‘냉장고의 리듬’에 맞춰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해요.”

슬프게도 우리의 일상은 이 작은 알아차림조차 어려울 만큼 분주하다. 살림살이 또한 넉넉하지 않으니 ‘세일 입맛’은 기본이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음식에 입맛을 맞추고, 장 봐온 재료들을 냉장고에 욱여넣는 것만으로도 생활은 벅차다. 하긴 당근이, 감자가, 호박이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생명이란 걸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먹는 음식이 그저 내일의 노동을 위한 영양소에 불과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우리가 자연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잃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1+1”으로 식탁은 풍성해졌지만, 보이는 것만큼 안전하지 않다. 냉장고로부터 구해야 할 건 정작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취재/글/편집  우민정

사진 우민희, 류지현

 

*강의 장면 외 자료 사진은  류지현 작가가 제공해주셨습니다. 출처는 www.savefoodfromthefridge.com 입니다.
*비전화공방은 현재 부엌에서 비전화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어요. 올 하반기에는 시민들과 함께 비전화 냉장고를 제작하는 워크숍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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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돌가마 터 잡기

“맛있는 빵 냄새가 피어나는 곳”


지난 5월 11일, 후지무라 선생님과 함께 돌가마 터를 잡고 사용할 벽돌을 살펴봤다.


비전화공방은 비전화카페 건축할 계획이다. 5월부터 연말까지 매달 건축 일정이 빽빽하다. 터를 잡는 측량부터 벽돌 한 장의 수평을 다지는 일까지. 모두 제작자들의 손으로 완성할 일이다. 카페 하나를 만들기에는 상당히 긴 시간이다. 한 달이면 새 건물이나 상점이 들어서는 도시의 속도감과 다르다. 제작자들의 성실함이 꾸준히 쌓여야 만들어질 카페는 ‘시간은 들일수록 좋고, 돈은 들이지 않을수록 좋다’는 비전화공방의 철학과 실행이 담길 장기 프로젝트이다.


카페에서 맛있는 빵을 만들어낼 ‘돌가마’도 만들 계획이다. 돌가마는 제작자들이 수련해야 할 5월의 과제이다. 공방에서는 매달 제작자들이 비전화제품을 만드는 법을 배워 사람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돌가마 시민 워크숍은 6월 17일(토)에 오픈한다. 4월에는 ‘태양열 햇빛 건조기’ 제작 방식을 배워 시민워크숍을 열었다.


태양열 햇빛 건조기 시민 워크숍을 준비하는 제작자들

(보러가기 →  http://noplug.tistory.com/46)


맛의 퀄리티를 다투는

빵집 가마는 1층식 구조


가마는 1층식과 2층식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층 식은 불을 때는 곳과 굽는 곳이 같다. 요즘 흔히 보는 화덕피자용 가마와 비슷한 유형이다. 가운데 숯이나 장작으로 불을 때면 가마 전체가 뜨거워지고, 온도가 200도 이상 올라가면 불을 구석으로 밀어내고 그곳에 조리할 음식을 놓는 방식이다. 2층 식은 불과 음식이 놓는 위치를 분리한다. 하단에서 불을 때면서 뜨거워진 2층에서 음식을 조리한다. 불과 음식의 위치를 분리되어 있어 2층식은 연속적인 조리가 가능하다. 하루 종일 불을 때며 빵을 구워낼 수 있어 효율적이다.


그렇지만 더 맛있는 빵은 1층 식에서 나온다. 2층 식은 바닥은 뜨겁지만, 전체 가마의 온도에는 차이가 있어서, 빵이 불균일하게 구워진다. 1층 식은 불이 가마에 직접 가열되어 고르게 뜨거워지고, 빵이 균일하게 구워져 더 맛있다. 하지만그만큼 손이 더 간다. 숯을 계속 옮겨야 하고 2회 이상 연속적으로 굽기가 어렵다.


“제가 있는 나스마치는 2만 4천 명이 사는 소도시이지만, 유명한 별장이 많아 외부 관광객이 많이 옵니다. 시골이지만 도회지 문명이 공존해서 빵집도 많고, 퀄리티도 높습니다. 나스 지역에서 퀄리티를 다투는 빵집들의 가마는 모두 1층식 구조입니다. 맛있는 빵과 피자를 좋아한다면 1층식을 권합니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더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1층 식을 추천했다. 돌가마는 단순히 효율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는 환기였다. 사실 도시에서는 불을 피우지 않아도 전기오븐으로 편리하게 빵을 조리해 먹을 수 있다. 그런 시대에 돌가마가 가지는 의미가 효율은 아닐 것이다. 돌가마는 효율보다는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빵과 향’을 피워낼 것이다. 또, 제작자들이 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조리해 판매(스몰 비즈니스)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돌가마 사진.jpg

일본 비전화공방의 돌가마, 모자이크 조각의 색감이 흙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돌가마 외관은

모자이크 작업으로

아름답게


돌가마는 열을 견딜 수 있는 내화 벽돌을 쌓고, 외면을 흙으로 덧붙인다. 일본과 한국처럼 가을과 겨울이 있는 지역에서는 겨울부터 초봄까지도 가마가 뜨겁도록 외면을 흙으로 덧붙인다. 흙으로 마감하는 것은 실용적인 이유이지만, 비전화공방에서는 모자이크 작업을 해서 더 아름다운 돌가마를 만들 계획이다. 재료는 깨진 도자, 유리, 타일 조각 등을 재활용한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카페와 돌가마가 조화를 이루는 경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속의 돌가마에는 후지무라 선생님이 좋아하는 무민 캐릭터가 콜라주 작업처럼 귀엽게 그려져 있다.


“여러분은 어떤 아름다움을 모자이크로 만들 건가요?” 기술적인 완성 이후의, 아름다움에 대한 선생님의 친절한 질문이었다. 모자이크의 아름다운 조각 하나하나를 다루는 선생님의 손길에 숨어있었다. “각지고 날카로운 파편을 그냥 사용하지 않고, 끝을 마모시켜서 둥근 조각을 사용하세요. 마모시킬 때 조각 전체를 살짝 경사지도록 깎아 주면 흙과 결합도가 높아지는 장점도 있습니다.”


실내에서 도면 설명이 끝나자, 실제 돌가마가 들어설 장소로 이동했다. 내화 벽돌과 시멘트를 날라 내려놓고, 직접 만져보며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물과 모래의 비율부터, 시멘트를 얹고 바르는 팔레트를 다루는 방식 등 처음 해보는 일에는 배워야 할 암묵지가 곳곳에 숨어있다. 제작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6월 17일 시민 워크숍 전까지, 돌가마의 토대까지 만드는 것이다. 혁신파크의 한쪽 귀퉁이 지금은 풀이 무성한 곳. 그곳에 한 장씩 신중하게 쌓일 벽돌만큼 비전화공방의 시간도 구체적으로 쌓이고 있다.



취재/글 박우영

사진 이재은

편집 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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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엔 비즈니스 : 덜 일하고, 더 행복하기


 

행복할 ‘시간’을 버는 비즈니스

 

‘행복’을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하지만 점점 ‘그걸 할 시간이 없다’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사람들은 다 각자의 이유로 바빴다. 바쁨의 내용은 달랐지만, 이유는 엇비슷했다. 대부분 생계를 위해 쏟는 노동이었다. 오죽하면 비즈니스(Business)의 어원이 ‘바쁘다’(busy)일까.

 

후지무라 선생님이 제안하는 ‘3만엔 비즈니스’는 좀 다르다. 일단, 바빠서는 안 된다. ‘3만엔 비즈니스’의 목적은 명확하다. 행복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를 위해 가능한 한 적게 일하는 것. 한 달에 하나의 일로, 이틀만 일해서, 3만엔(30만 원)’만’ 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라기보단 시간을 버는 노동인 셈이다. 돈을 많이 벌려고 하면 본뜻에 어긋난다. 필요하다면 여러 개를 할 수는 있다. 단, 일상의 여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또, 한가지의 일로는 3만엔만 번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일이 많이 들어온다면? 친구와 나눈다. 그럼 수입이 줄지 않나? 당연하다. 3만엔 비즈니스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돈 버는 시간을 줄여 그만큼 일상을 풍요롭게 꾸리는 데 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시발 비용’(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소비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 소비를 위해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까지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니, 좀 억울하지 않은가. ‘3만엔 비즈니스’가 제안하는 삶은 지지리 궁상의 가난한 모습이 아니다. 지출을 안 해도 풍요롭고 즐거운 생활. 그것이 ‘3만엔 비즈니스’가 도달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비전화공방 제작자들은 근 한 달간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지난 5월 10일 함께 모여 그간의 궁리들을 발표했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이날 “여러분은 일자리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전화공방의 ‘3만엔 비즈니스’ 이야기를 후지무라 선생님 목소리로 전한다.



이날 제작자들은 각자가 생각해온 3만엔 비즈니스를 발표했다.

버려진 옷으로 만든 빗자루, 아트 플랜터(예술적인 화분),

빗물을 활용 방법을 알려주는 워크숍, 남은 채소 배달하기 등

각자의 재능과 개성을 살린 36개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3만엔 비즈니스,

미래에서 좋아하는 일 찾기


저번 달에 제가 숙제를 내드렸습니다. “나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일” 세 가지를 상상해 오라고요. 한 사람이 3개의 아이디어를 만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 번째 약속은 “동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사업 아이템을 찾으라고 하면, 자기 세계 에 갇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틀 안에 갇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정도야’ 하고 멈출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건 매우 좁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찾으려면 자신의 벽을 허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다시 말하면 “좋아하는 것은 미래로부터 찾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 찾으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약속은 “실현할 수 있지 않은 걸 찾아도 좋다”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셨나요? 이런 약속을 한 이유도 단순합니다. 실현 가능한 일 또한 아주 좁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므로 상상의 폭을 더 넓혀야 합니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을 기준으로 두기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것부터 상상하는 거죠. 충분히 상상한 다음에 사회성을 붙이고, 사업성을 붙일 겁니다. 매력적인 일을 찾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람들이 안 사고는 못 배기는걸” 찾아야 합니다.(웃음) 그러므로 ‘나조 나조 현상’(해결법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 수수께끼)이 발생합니다. 저번 시간에 ‘나조 나조 현상’을 극복할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기억나시나요? 네, 30분만 고민해보는 겁니다. 중요한 건 30분‘만’입니다. 30분 이상 생각했는데 생각이 안 나면 자기 안에 답이 없는 겁니다. 시간을 더 쓰는 건 시간 낭비겠죠.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죠? 포기?(웃음) 팀과 의논을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다른 팀을 찾아 상담합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저와 이야기하면 됩니다.

나만의 틀에 갇히거나
실현 가능한 것만 상상해서는
매력적인 일을 찾을 수 없어


어떤 경우, 아무리 생각해도 안 풀리는 나조나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그 아이디어 자체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디어 자체가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굳이 시간을 들여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 아이디어의 상품성은 1.5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아무도 안 산다”는 말입니다. 상품 레벨 4 이상 가져와야 합니다.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레벨 5가 만점이죠. 레벨 5는 배우자가 반대하면 이혼해서라도 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매력적인 상품입니다. 보통 처음 만들면 레벨2 정도일 겁니다. 다시 말해 팔리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한 번 더 상품성을 올릴 수 있도록 개량을 할 겁니다. 보통 한 팀이 하나의 아이템을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1명이 아이템을 3개나 만듭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할까요? 이런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다는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보통은 학교가 끝난 후에 일을 하죠. 일본에서도 제자들이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잘 팔립니다. 해보면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힘들겠지만, 실제 해보면 잘 팔립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겁니다. 또, 비전화공방 외의 사람들도 함께 팀을 이룰 겁니다. 제작자 2인과 아티스트 1인, 시민 1인이 함께 만들어서 실제 장터에서 판매할 겁니다.


이렇게

외연을 넓혀 함께하는 것

실제로 하는 것이

비전화공방의 방식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발표는 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팔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공부를 하나 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좋다는 교훈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몸으로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는 사람의 기분이 되어야겠지요? 그 사람의 혼이 자기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내가 완전히 변신했을 때만 팔립니다. 사는 사람의 눈으로 나와 동료의 아이디어를 봐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저 물건이 사고 싶은가?” 계속 질문을 던지며 훈련하세요. 과제를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여러분의 상품을 광고하는 전단을 만들어보세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모아봅니다.

 

훈련을 반복하면, 훈련만으로 끝내기 아쉬울 정도로 좋은 상품이 나올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아이템이 우리의 공유재산이라는 점이죠. 우리에겐 그럼 곧 서른여섯 개의 수준 높은 아이템이 생기는 겁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 기억합시다. 이게 바로 비전화공방의 방식입니다.


 


취재/글/편집 우민정

사진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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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방사능' 측정하기

- ‘원전’이라는 도박에서 벗어나는 방법

"느낄 수 없는 것은 돌보지도 않는다."

레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원전’이라는 불공평한 도박

한 강의에서 들었던 일화다.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강사는 깔끔한 성격이라 늘 혼자 치우기 바빴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눌렀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치우는 사람,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냐”며 동생들에게 화를 벌컥 내던 그때, 그의 어머니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얘야, 세상에는 치우는 놈이 따로 있단다.” 삶을 통달한 듯한 그 대사에 모두 웃었지만, 웃음의 뒷맛은 씁쓸했다. 그녀의 생각이 처음부터 그리 체념적이진 않았으리라. 그것은 ‘공평한 노동’을 주장하는 것조차 다시 노동으로 돌아오는 현실에서 그녀(들)가 취한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전기(電氣)는 모두가 쓰지만, 원전의 위협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극소수다. 사람의 마음은 위협을 느낄수록 더 냉담해지기도 한다. 그래야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해왔다. 일본 정부 역시 늘 원전이 완벽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간편하게’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 말은 도박이었다. 2011년 3월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방파제 높이는 5.7m였고, 그날의 쓰나미 높이는 15m였다. 방파제가 더 높았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언제 그 이상의 쓰나미가 덮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날의 쓰나미 역시 천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높이였다.

‘켄스케(일본 비전화공방 부대표)’는 원자력 사업 자체가 ‘도박’이라고 말한다. 이 도박은 ‘이익을 보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이 다르다. 그리고 치뤄야 할 대가가 크다. 지금이야 지진과 쓰나미가 잦은 일본에서 바닷가에 원전을 지은 것 자체가 황당하지만, 사고 이전에는 "원전은 안전하다. 사고는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켄스케는 전제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원전 사고는 바로 지금 당장에라도 일어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일본

“방사능 시민측정실”

도박의 대가는 컸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전역을 순식간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당장 떠나야 한다. 일본 전체가 괴멸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재난은 사람들의 마음을 극단으로 몰아세웠다. 켄스케는 둘 다 모두 위험하다고 말한다. 괜찮다고 믿는 건 무지한 채 피폭을 당할 위험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일본을 떠나는 것 또한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일이다. 보통 때라면 당연히 좀 더 안전한 쪽에 기준을 두고 움직이는 게 맞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은폐해서도 안 되겠지만, 위험만 강조하다 보면 ‘나만이라도, 우리 가족만이라도’하는 태도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재난으로 가장 고통받은 지역의 거주민들은 ‘낙인’으로 인해 이후 더한 사회적 고통을 겪어왔다.

켄스케가 바라본 ‘원전 이후의 일본’도 그랬다.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이라고 모두 피폭을 당한 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기형아를 낳을 거라고 말했다. 실제 파혼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후쿠시마에 가지 않는다든가, 다녀온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사고 지역의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음으로써 ‘가짜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했다.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함으로써 ‘위험’에서 자신은 벗어났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공해병’이 있었다.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것이 지역에 대한 낙인으로 작동했다. 켄스케는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시민들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원전 사고의 영향이 후쿠시마에 한정된 것도 아니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움직인다. 일본의 비전화공방이 있는 나스 지역은 후쿠시마로부터 직선으로 100km 떨어져 있다. 하지만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방사능이 바람을 타고 오기 때문이다. 유통되는 먹거리 역시 안심할 수 없다. 다행히도 일본 전역에서 통렬한 반성이 일어났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방사능에 대한 지식과 정확한 측정 방법을 알고 이제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사능 시민측정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측정실 운영하기 위해서는 방사능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통계학과 컴퓨터 엔지니어링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방사능을 연구하고 측정하며. 그 결과를 지도로 만들어 공유한다.




서울에서 ‘방사능’ 측정을 하는 의미


지난 4월 비전화공방서울에 온 켄스케(일본 비전화공방 부대표).

비전화공방 제작자들에게 방사능 측정기가 필요한 이유와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은 아직 대형사고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방사능 측정을 한다는 건, 아주 지성적인/지혜로운 선택이다. (켄스케, 방사능 측정기 강연 中)


방사능은 굉장히 까다롭다. 미세먼지 역시 당장 해결하기 어렵지만, 눈으로 보고 코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방사능은 그런 방식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더구나 극미량으로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정밀한 측정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바람으로도 쉽게 확산되기 때문에 얼마나 확산됐는지 계속 살펴야 한다. 원자로가 붕괴한다거나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하는 게 다 확률적인 문제라 통계학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증상이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방사능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백혈병에 걸리면 그게 방사능 때문이라는 걸 증명하기 어렵다. 방사능은 인력으로 중화시킬 수도 없다. 아주 오랜 시간 없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비전화공방은 원전 제로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원전이 당장 없어지지 않으니 현실적인 대비 또한 필요하다. 최소한 일상생활에서 방사능 수치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있는 실천이라고 켄스케는 말한다.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원전은 완벽할 수 없다. 원전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준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이 시작하기 가장 좋을 때다. 수치를 재보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각자가 직접 알아가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토양과 먹거리에 대한 방사능 측정 경험을 쌓아야 사고에 대비할 역량도 키울 수 있다. 변화를 위해 당장 치루어야 할 고통이 있겠지만, ‘고통에도 목적은 있다. 느낄 수 없는 건 돌볼 수도 없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레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고통을 겪은 뒤 일본인들은 전문가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치우는 사람과 어지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공동체는 공동체가 아니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방사능은 치우는 사람과 어지르는 사람을 분간하지 않는다.


비전화공방 서울에 설치된 방사능 측정기

제작자들은 측정기 사용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취재/글/편집 우민정

사진 이재은, 김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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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지무라 강연 “전환기 이후의 삶”



자본주의의 붕괴는 기정사실이라고 말하는 후지무라 선생님. 문제는 ‘전환기 이후’다



여러분은 자립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습니다.


강연을 여는 후지무라 선생님의 첫 마디였다. 그는 지금의 시기를 문명의 전환기로 정의했다. ‘자본주의가 과연 붕괴될까?’라는 고민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가 사라지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대안은 무엇일지에 대해 이미 고민을 시작했다. 전환기에는 지키는 사람과 바꾸려는 사람 간의 갈등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돈과 권위가 없는 사람들은 지금 사회를 굳이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자연스러운 맥락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꿔나가는 희망을 가질 때 이런 사람들하고만 함께 할 수는 없다고 후지무라 선생님은 이야기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대부분은 기존 사회가 주는 여러 가지 이익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다. 동시에 생활 속에 겪는 갖가지 불합리와 차별로 인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기도 한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은 기득권과 변화 사이에서 흔들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상대편으로 돌리기보다는, 이들에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년들이 그리는 새로운 삶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시도들이 가능할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후지무라 선생님이 전해준 청년들의 움직임은 흥미로웠다. 미국의 청년들은 6년 전부터 “타이니 하우스 운동(Tiny House Movement)”으로 새로운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타이니 하우스 운동은 두세 평짜리 작은 집을 만들어 그곳에서 최소한의 것들을 가지고 살아보자는 제안이다. 중요한 건 그들이 타이니 하우스 운동을 하는 이유가 단지 큰집을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청년들은 예전 아버지 세대와 달리 커다란 저택을 구입해 살기 원하지 않는다. 좁은 집이지만 그곳에서 개성있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격렬하고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쿨’하게 자본주의를 넘어서버린 것이다.



미국의 타이니하우스 운동의 한 사례. 미국 청년 앤 홀리가 만든 환경친화적인 작은 집이다. 전기 플러그 없이 풍력과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한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s://goo.gl/RIrMJQ)



독일은 4년 전부터 ‘지출 제로 프로젝트’가 유행이다. 물물교환과 상호지지의 형태로 지출을 0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끼리 공감대를 쌓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서로의 지출과 각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공유한다. 각자 필요한 물건을 맞바꾸거나 경우에 따라 재화와 기술을 교환하며 지출을 줄여나간다. 두세 명만 모여서는 가진 재산과 기술의 한계가 있기에 지출을 10%나 20% 정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지출 제로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 200명이 모이면 지출을 100% 줄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공감대를 쌓는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비전화공방이 그려갈 미래


비전화공방도 결국 전환기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움직임이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부자는 더욱 부자로,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한 자로 몰아가는 자본의 논리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여섯 명이 가진 재산이 가난한 사람 36억 명이 가진 재산과 같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 엄연한 지금의 현실이다. 한 사람의 부자가 탄생하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저임금 노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 간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한 나라가 부유하게 소비하면 다른 나라는 그만큼 착취당한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과 사람 간, 국가와 국가 간 빈부격차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석탄을 사용하던 시기에 자본가가 자신이 투자한 금액의 50배를 벌어들였다면, 석유 시대에는 200배의 이익이 있다.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전환기 이후의 삶을 함께 상상해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후지무라 선생님



후지무라 선생님은 그 예로 일본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핵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을 처리할 곳을 국내에 건설하지 못하자, 몽골에 적당한 돈을 주고 처리장을 지으려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강행하려 했지만 후지무라 선생님을 비롯해 국가 간 인도주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요즘 태양열 발전이 에너지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문제가 많다는 게 후지무라 선생님의 분석이었다. 일본에서 태양열 발전기를 집이나 회사에 설치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생산한 집열판을 사서 쓰는데, 이 집열판을 만드는 데에 들어간 에너지와 집열판을 통해 5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같다. 집열판 제작에는 화석 에너지가 사용되어 중국과 한국의 대기를 오염시킨다. 정말 태양열 발전이 자원절약과 순환에 도움이 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아랑곳없이 일본인들은 과시하듯이 새로운 제품들을 끊임없이 사들이며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일방적인 한쪽으로의 쏠림을 막고, 평등하고 공정하게 나눠갖는 철학을 아로새기는 것이 비전화공방의 첫 번째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말했다. 내가 지금 쓴 에너지, 우리나라가 쓴 에너지를 타인이나 다른 나라, 혹은 후대에 전가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가지고 멀리바라보는 시야가 필요하다는 말로 모인 자리를 매듭지어졌다.


취재/글 : 조은호

사진 : 김다연

편집 : 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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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마음’을 전하다


비전화공방서울 제작자들과 후지무라 선생님의 첫 만남

첫 만남으로 살짝 언 마음을 녹이는 ‘스네이크 댄스’를 추고 있다.


동그랗게 둘러선 아침. 시작한다는 설렘과 건강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후지무라’ 선생님이  원 안으로 들어온다. 서로의 표정이 환해 진다. 인사가 오가고, 몸을 움직이는 ‘스네이크 댄스’가 시작됐다.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길잡이가 된 후지무라 선생님을 따라갔다. 원이 점점 좁아지며 한 마리 뱀의 모습처럼 조여진다. 빙빙 도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옆 사람의 손을 꽉 움켜쥔다. 원이 꽉 조여지는 순간, 묵직함을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시작하는 마음이 전해온다.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오는 것’이라는 시처럼, 각자의 삶을 담은 글들을 꺼냈다. 노트, 편지지, 핸드폰 등 서로 써 온 글을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조심스러움, 그리고 혼란. 그럼에도 새로 시작하는 비전환공방에서의 1년에 대한 설렘을 꺼내놓았다. 어색하게 둘러 앉았던 거리가 조금은 좁혀지며, 다시 서로의 이야기가 잘 들리도록 가까이 고쳐앉았다.


비전화공방서울 제작자들과 후지무라 선생님의 첫 만남,

설레는 마음으로 원으로 둘러앉았다

시작하는 마음을 담은 토막글을 읽는 제작자 ‘진뭉’


사회적 이슈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데 익숙해져서, 내 삶도 진보적이라 생각했었나 보다. 내 가까이 있는 일상은 얼마나 돌보고 살았을까?

타인을 즐겁게 해야 했던 나의 일, 그 안에 나의 일상과 즐거움은 없었다.

일상의 호흡을 느끼기보다는 도시 속에서 그저 기계적으로 살아온 나. 삶에 대한 회의감이 자주 밀려왔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걸 느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과 일터에서는 찾을 수 없던 일상의 풍요. 좋은 가치를 지향하는 일과 그것을 실제 일상을 연결하는 일은 달랐다. 책과 영상으로 보아 머리로는 바라는 삶의 모습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일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도시와 자본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직접 손과 몸을 써서 얻는 충족감을 앗아갔다.


바라던 삶이 일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존과는 다른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결심도 필요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쁨’만큼 기존의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불안’도 컸다.


매주 5일, 그 꽉 찬 시간을 내가 보낼 수 있을까. 그동안은 머리로만 알고 살았다. 생태나 대안적 삶, 진보적 가치를 알고는 있었지만,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앞으로 느낄 도시에서 흙을 만지는 기쁨, 지향이 같은 사람들과 만나는 반가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노동은 얼마나 즐거울까.

시간을 내는 결심이 뒤따랐다. ‘나는 왜 이걸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 할수록 답은 또렷하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보내던 기존의 시간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 기존에 보내던 시간들의 의미는 무엇이지? 더 큰 의미로 생각해보면, 삶을 살아내는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시간이다. 비전화공방에서의 시간도 그 맥락에서는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과거의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힘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후지무라 선생님


머리로만 생각하던 각자의 혼란을 넘어 바라는 삶, 그 설렘을 말하기 시작했다. 1년 바라는 삶을 얼마나 몸 가까이할 수 있을까.


일과 일상을 분리하고 싶지 않다. 효율적으로 빨리 일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스템보다 사람 먼저, 그렇게 감정과 감각을 나누며 살고 싶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싶다.

삶을 풍요롭게 살고 싶다. 내가 내 인생을 꾸리고, 가꾸고 싶다. 나와 우리 세상과의 감각을 일깨우고 철학을 세워나가는 작업.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 임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게임보다는 기타를 치는, 생활을 더 음미하는 삶.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배운 것을 다른 필요한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삶.


몸을 직접 움직여 일구는 삶은 사실 막연하다. 1년 후를 생각해도 삶이 얼마나 변할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은 여기 시작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기대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도록 교육받고 살아왔다. 폐를 끼치는 선을 넘지 않으려던 나만의 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립되지 않았을까. 나와 타인을 재고 따지는 것을 조금씩 놓는 훈련이 되지 않을까. 서로 폐를 끼쳐보려 한다.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드는 삶,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년 살이.


행복의 공동체는 혼자 할 수 없다.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싶다.

자립하는 힘을 키우고 싶다. 혼자는 어렵기 때문에, 같이 기대설 수 있는 삶. 자립을 향한 전환기가 되면 좋겠다.



















미리 적어온 이야기를 직접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는 제작자들



후지무라 선생님, “자립은 자기 별을 찾아가는 과정”


제작자들의 시작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후지무라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함께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힘을 키우자”는 작은 선언들이 이어졌다. 이야기는 자립에 대한 고민에 다다랐다. ‘독립’과 ‘자립’. 둘 다 자주 들은 단어지만 명확히 정의하지는 않았던 단어들. 무엇이 다를까. 사전은 ‘독립’을 ‘다른 것들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서게 된 상태’로, ‘자립’은 ‘스스로 서는 상태’로 설명한다. 사전을 봐도 둘의 차이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후지무라 선생님은 자신의 해석을 들려주었다.



‘독립’은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들로부터 멀어짐, 혹은 중립을 말합니다. 하지만 ‘자립’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서는 상태’입니다. 주변과의 조화가 중요하지요. 결국, ‘자립’은 자기의 별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자기의 별은 미래의 자기가 빛나고 있을 미래의 상입니다. 소위 비전이라고도 하죠. 뒤에 올 누군가를 비추어 줄, 누군가가 올려 다 볼, 그것이 자기의 별입니다. 자기의 별이 발견되면 그곳을 향해 가는 여정이 되지만, 자기의 별이 보이지 않으면 땅만 보고 걷거나 자기의 마음만 들여다보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들은 말들을 일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아마 감동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나눠준 고민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공부나 기술은 열심히해도 자기 생활과 분리되는 구조입니다. 공부만 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회와 유리되는 것이죠. 막상 준비되어 사회에 나와도 써먹을 장이 없어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세상과 멀어지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전화공방에서의 삶은 공부와 술, 생활, 일, 기술, 환경을 융합하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시간이 될 거에요.



후지무라 선생님은 공방에서 추구하게 될 조화와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하였다. 물건을 만들 때 자연의 은혜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감성들, 그런 연결감을 잊지 말고 제작자의 혼을 담아 만들어야 ‘아름다움’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짧게 주고받은 대화에서 1년을 기대하는 기운이 솟아났다. 마무리로 아프리카 댄스를 춰 온 친구의 구령에 따라 함께 춤을 배워보았다. 어째 좀처럼 한 동작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제각각인 춤 동작처럼, 앞으로의 시간이 제작자들에게는 각자 자립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언어를 갖추고 혼을 단련시키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취재/글 : 박우영

사진 : 김다연

편집 : 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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