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계절감'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마트에 가면 어느 계절과 상관없이 쌈채소와 고구마, 감자, 양파, 대파 등의 야채가 있다. 그나마 제철에 나는 과일로 계절을 느낀다. 여름엔 참외, 수박, 자두, 복숭아, 포도 등으로 색감이 풍성해진다. 물론 겨울에도 이런 것들을 '비싼 돈'을 주고 먹을 수 있다. "우리는 무얼 먹고 사는가, 어떻게 먹고 사는가"가 이번 포럼을 시작하는 질문이었다. 우리가 현재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척도로 보여지는 '부엌'이란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나눴다. 


적당포럼에 참여한 분의 표현대로 여름부엌은 긴장의 연속이다. 무더울수록 상하기 쉽고 벌레가 잘 꼬이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쟁여놓는 음식들을 봐도 여름이든, 겨울이든 상관없이 빼곡하다. 냉장고에 넣기 위해 음식을 살 정도로.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은 좀처럼 꺼내지지 않는다. 




마침 작은것이 아름답다 7,8월 특집호 주제가 <생태여름부엌>이었다. 7월 적당포럼을 함께 진행하게 되어 자연스레 주제가 정해졌다. 비전화공방서울에서도 20여명 되는 사람들이 점심을 만들어먹는다. 텃밭에 나는 작물들로 요리를 한다. 냉장고가 없어서 되도록 남기지 않고 다 먹는 편인데, 남는 반찬들은 공용냉장고 신세를 지기도 한다. 확실히 여름은 냉장고가 없어서 불편한 계절이긴 하지만, 덕분에 남기지 않는 요리법을 익히고 있다. 쌀을 개량하여 밥을 짓고, 딱 알맞게 먹는 방법을 연구한다. 적당포럼에 모인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살림할거냐'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1년 전에 결혼을 했는데, 작은 냉장고를 쓰다보니 짜증이 났어요. 냉장고에 넣어야할 건 많고 다 안 들어가니 짜증이 난 거죠. 왜 밖으로 빼낼 생각은 하지 못할까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 비전화공방서울 제작자1기 신수미


'부엌' 공간과 우리의 삶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철을 모르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다. 철이란, 제철할 때의 계절을 의미하는데 '냉장고가 철을 모르게 하는 주범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름살림부엌'을 주제로 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은것이 아름답다 7,8호 특집호에 실린 문구를 돌아가며 읽었다.   



부엌은 오랜 전통이 집약되어 있고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공간이었다. 늘 삶의 중심이었는데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냉장고 기능도 다양해지고 온갖 편리한 도구들로 가득하지만, 단지 끼니를 때우는 공간이 됐다. 자본이 부엌의 실종을 빠르게 부추기고, 삶의 주도권을 빼앗고 있다. 그런 삶은 건강하지 않다. 

- 작은것이 아름답다 7,8월 특집호 중에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5-6명씩 쪼개져서 깊이있게 이야기했다. 




조별로 모여서 적당포럼에 오게 된 이유와 냉장고 없이 살아가는 기술, 내가 요즘 하는 고민들을 나눴다. 잘 살고 싶어서, 잘 먹고 싶어서 왔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무얼 먹느냐가 곧 나를 구성하는 셈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요리를 하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혼자 먹는 건 맛이 없으니까. 가족과 사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이웃과, 혼자 사는 친구들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장으로써 부엌이 활용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말했다. 


적당포럼은 다음달 적당포럼 전까지 조별로 한두가지의 약속을 정한다. 냉장고 한 칸을 비우겠다,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먹겠다, 제철음식 사먹겠다 등이었다. 냉장고 없는 부엌을 시작으로 관계맺는 방식, 제철요리, 요리법, 베란다 텃밭가꾸기 등 주제가 무궁무진했다. 결국 이번달에는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자연과 연결감을 가지면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부엌은 좋은 매개거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당연하게 쓰는 냉장고가 없이도 생활이 가능하구나, 지금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선택의 폭이 확장된 시간. 이런 게 자연스러움의 출발 아닐까 싶다. 



글쓴이/사진  재은 


Posted by 비전화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