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삶을 만드는 즐거움

- 스스로 만들고 즐기는 일상 1강 후기



비전화제작자로 산 2017년, 제작자 모두 작년 한 해를 넘기는 심정이 다른 해와 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 비전화제작자가 된 4월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비슷한 질문에 당면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작년 봄과 여름에는 “왜 비전화공방에 왔어요?”, “비전화공방은 뭔가요?”, “비전화공방에서 무얼 하나요?”와 같이 동기와 배경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면, 날이 추워질수록 그리고 다시 봄이 찾아드는 근래에는 “졸업 후 무슨 일을 하려고 하나요?”,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유지했어요? 앞으로도 비전화의 방식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것 같나요?”와 같이 1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가 도달한 지점이 어디냐는 질문이 많다. 묻는 이에 따라 답하는 시점에 따라 응답은 매번 조금씩 바뀌었고, 어쩌면 그 질문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하기 위해 여태 고군분투해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문화비축기지와의 프로그램은 그 답을 보여줄 적당한 장이었다. 비전화공방서울 사업단을 통해 비전화공방에서의 배움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비전화제작자 1기 모두가 각자 방점을 두고 있는 혹은 나눌 수 있는 역량을 중심으로 함께 일하는 기회를 가져보기로 했다. 무엇으로 시민들에게 말을 걸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그들의 고민과 우리의 삶이 맞닿을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전할 수 있을까. 총 7회의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일상』은 여러 측면에서 지난 시간들을 응축하고 체화하는 시간이었다. 비전화제작자 1기가 서로가 외부의 요청에 응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동료로 일할 수 있을지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기존의 것들과 어떤 점에서 같거나 다를 수 있을지 확인해보는 상황이기도 했다.


개론 격이자 1강이었던 「바라는 삶을 만드는 즐거움」을 준비하는 과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이 주제로 어떤 처지와 마음가짐의 사람을 우선 만나보고 싶은지 그렇다면 그 방법은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지 함께 하는 제작자인 모로, 진뭉과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눴다. 그 후 각자가 이 장에서 어느 정도의 품과 시간을 내고 싶은지 솔직하게 꺼내놓고 역할을 조율했다. 서로가 맡은 일을 준비해오면 함께 살펴보면서 보완하거나 수정할 점들을 맞춰나갔다. 서로의 빈 곳을 메우고 얹어가는 과정이 때로는 더디거나 버겁기도 했지만, 그 과정 동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과 중심으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서로를 상기시켰다. 세세하게 분업하고 함께 일하는 이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일하는 방식이 능숙했던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의와 질의응답을 준비하며 비전화공방에서의 생활을 들춰보고 재배열하면서 센세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한 순간순간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나의 1년을 가지런히 배치해보며 내가 무엇을 느끼고 익혔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문화비축기지에 우리와 이야기나누기 위해 찾아온 사십여 명의 시민들과 눈을 맞추며 그들이 이곳까지 찾아온 수고가 괜한 것이라 여기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다행히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들어주셨고 날카롭게 물음을 던지시기도 했다. 완벽하거나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지나온 1년과 앞으로 함께 하고픈 시간과 방식에 대해 손을 내민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자평해본다.





추상적이라 느낄 수밖에 없었을 우리는 이런 일상을 살아왔고 살아갈 거라는 다짐들. 그리고 우리 외에도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고 살아갈 방안들도 여럿 있다는 제안들. 우리가 날린 말들이 얼마나 그분들의 가슴에 씨앗으로 심어졌을까. 하지만 겨우 이제 시작이다. 농사에서 배웠듯 설령 발아하지 못한 싹이 있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흙의 상태를 살펴가며 적절한 모종을 심고 꾸준하게 물을 주는 일. 우리가 비전화공방에서 배운 전부는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함께 하면 그 일들이 더 즐거워질 것이라는 기대. 그 희망이 우리를 자꾸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한다.   


글쓴이 :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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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 2기 모집 설명회에서의 질문과 답변



비전화 2기 제작자 모집을 위한 두 차례의 설명회가 공방 사무실에서 열렸습니다. 

설명회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을 공유합니다. 




Q: 제작자 선발기준이 어떻게 되나요?


선발 기준은 첫 번째도 체력, 두 번째도 체력이에요. 일년의 과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에요. 선택 결심이 필요해요. 일년을 견딘다는 건 스스로에게도 도전 일 거에요. 자기 마음의 힘, 마음의 체력도 필요하고 집 짓고 제작하는 것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더라고요. 건강해야 가능한 일들이 많아요. 체력을 많이 봐요.

두 번째는 함께 하면서 좋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인가에요. 자기가 어떤 의지와 신념들을 가지고 이곳에 오는가도 봐요. 하지만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체력이에요.

‘함께 생활하기’라고 해서 제작자 생활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파악할 수 있기도 해요. '말'만으로 보고 뽑진 않아요.



Q: ‘함께 생활하기’는 2기 신청자들이 다 참여 할 수 있나요?


2차로 통과된 분들 대상으로 진행해요. 저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최대치로 열 두 명이더라고요. 지원 과정에서 함께 하시지 못하는 분들은 저희와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지원하신 분들과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어요. 과정 중에 제작자가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는 시민 강좌나 워크숍을 열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어요.



Q: 결석을 많이 하게 되면 불이익이 있나요?


출석률에 대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자발성이 중요해요. 한 사람이 덜 나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줘요. 열 두 명이면 세 명씩 나눠져서 밥도 하고 제작 활동도 같이 하게 되요. 빠지게 될 시 사정이 생기면 미리 양해를 구하해요. 하지만 많이 빠지 게 되면 함께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자신에게 공방에서 일 년을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 일 순위인게 중요합니다.



Q: 밥은 어떻게 같이 해 먹나요?


원래는 비전화공방 전용 부엌이 있는데요 지금은 혁신센터 공용부엌에서 해 먹고 있어요. 텃밭에서 키운 것들로 요리하기도 하지만 겨울철이나, 20명분을 다 자급하기엔 무리가 있어 생협에서 재료를 사와서 하기도 해요. 메뉴는 그날 식사 팀이 결정해요. 채식하는 분이 있어서 고기가 나오는 날은 두가지 버전을 만들기도 해요.



Q: 일 년의 과정 동안 제작자 각자의 생활비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아침, 저녁 알바와 주말 알바를 하기도 하고, 적금을 깨기도 하고, 청년 수당을 신청하기도 해요. 기회가 되면 공방에 들어오는 작은 일거리들을 연결해 주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제작자 각자가 온전하게 감당해야 할 부분이에요.

그리고 훈련 과정 중에 자기 지출을 밝히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이 있어요. 올 해는 자기 지출 패턴을 재구성하는 것을 좀 더 일찍 시도해 보려 해요.





Q: 제작자 과정이 끝나는 1기는 이후에 무엇을 하나요?


외부에서 비전화 공방으로 다양한 기회를 제안해와요. 그런 기회가 오면, 이제는 1기 제작자들이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수행과정으로 삼기도 해요. 1기는 이제는 현실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초기 자금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주고, 사업단이 사회적 자원을 연결하는 것도 계속될 거에요. 일 년 과정이 끝나도 후지무라 선생님과도 짧게라도 만날 수 있는 자리도 가지고요.

비전화 공방은 자기 삶의 기반을 실제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제작자 이후 과정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어요. 비전화 카페 시범 운영도 1기에게 자치적으로 맡겨 보려 해요. 카페는 비전화 가치와 철학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해요.



Q: 제작들이 일년 동안 낙오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나요?


제작자 과정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동기는 자기 자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에요. '이게 하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거야?'를 계속해서 물어요. 자기 자발성에 기반한게 아니면 지속성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작자 과정에서는 자기 자발성을 어떤 식으로 우리 안에서 이어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했어요.



설명회에서 답변하는 1기 제작자(단영, 로미)



Q: 제작자들 간의 갈등은 없었나요?


제작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남은건 동료에요.'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희는 지난 주 이야기를 털어 놓고 월요일을 시작하는 '한 주 열기'를 해요.

그리고 관계가 전환 되었던 것은 24시간 함께 생활했던 일본비전화공방에서의 시간이었다고 해요. 거기서 맺어진 신뢰와 안정감으로 지금까지 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료가 되기 위해서 갈등은 필요해요. 동료가 되려면 지지고 볶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게 중요하지요. 갈등이 '드러나서' 해소될 수 있는 구조가 우리에게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갈등은 말로 풀지만, 생활과 삶의 영역에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층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생각하는 바는 다르지만, 목공 작업 스타일이 잘 맞을 수 있지요. 제작자 과정은 생활과 삶의 영역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층위가 다양하고, 대화의 영역만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소통을 할 수 있었어요.



Q: 후지무라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철학과 가치를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삶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분은 많지 않아요. 그 철학이 실제 삶에 반영되기 위해 실천하는 분이에요. 제작자들이 어려움이 부딪히면 센세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을 보면서 그 철학이 제작자의 삶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Q: 비전화 공방’서울’인데 다른 지역으로 거점이 다양해질 수 있나요?


저희가 하려는 것에 있어서 지역성과 공동체 단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비전화공방서울'로 이름을 지었어요. 저희는 서울지역 안의 모델이고 다른 지역으로 거점이 다양하게 생겨나는 게 저희 활동의 의미에요.


Posted by 비전화공방


비전화수기공모



지렁이 기르기

황지현



지렁이 데려오기

지렁이를 처음 데려온 건 14년 봄. 지렁이를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통을 챙겨 무작정 서초동의 에코붓다사무실로 향했다. 담당하시는 분께서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주걱으로 지렁이를 푹푹 퍼서 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


 

지렁이의 집

지렁이를 담은 통을 들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집에 도착해 풀어보니 지렁이가 위독했다!

그제야 지렁이 집을 급조하기 시작했다. 토분이 좋다는데, 밖에 나가서 찾아보니 그날따라 버려진 플라스틱 화분 쪼가리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 그렇다면 있는 걸로 해결하자! 버리려던 스티로폼 박스에 구멍을 뚫고, 신문지를 깔았다. 그리고 한밤중에 뒷산에 올라 흙을 퍼 담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지렁이 집! 여기에 실신한 지렁이들을 고이 뉘여 드리며 지렁이 기르기가 시작되었다.

 


지렁이의 먹성, 생각 같지 않더라.

물만 주며 적응하는 1주일이 지난 후 음식물쓰레기(이하 음쓰) 먹이기에 도전해보았다. 한쪽 구석을 파고 잘게 썬 야채 부산물, 과일 껍질 등을 넣고 흙으로 잘 덮어주면 된다. 다음번 먹이를 줄때는 다른 한쪽을 또 파고 주는 식이다.



무엇보다 지렁이가 좋아했던 건 축축하게 부숙된 야채였다. 단호박이나 수박 등을 주면 깨끗이 파먹어서 아주 얇은 껍질과 씨앗만을 남겨놓곤 했다. 지렁이들이 바글바글 음쓰에 몰려있을 때의 뿌듯함이란(먹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지렁이들이 몰려있다면 환경에 문제가 있는것이라고 한다.) 

과일껍질은 단독으로 주면 안 된다고 해서 다른 음식을 줄때 곁들여서 제공. 농약이 묻어있을 확률이 많은 수입과일도 제외, 소금기가 빠진 잔반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혹시 몰라 제외하였다. 간혹 육류나 생선을 먹이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거기까진 도전해보지 않았다.



이렇게 엄선해서 지렁이 먹이를 대령하다 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뭔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지렁이들이 하루 한봉지씩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줄 줄 알았는데, 실제로 얘네 들은 고작 하루에 자기 몸의 반정도밖에 먹지를 않았다. 당시 우리집에서 나오는 음쓰를 바로바로 처리하려면 거의 방 하나에 흙을 때려 붓고 지렁이 사육장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미처 먹이지 못한 음쓰들이 냉장고에 쌓여갔다. 수박한통 먹고 나서 거의 한달 넘게 수박껍질을 보관했던 기억이 난다. 오직 지렁이에게 먹이기 위해...

얼마 후 나간 지렁이 엄마 모임에서 이 사실을 이야기 하니 밀린 음식물쓰레기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건 본래 취지랑 어긋난다고 해서 상당수의 음쓰를 그냥 버렸다. 그 후 재고를 쌓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그냥 처음부터 음쓰를 적게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음식이 상하지 않게 재고 관리를 철저히 하고, 웬만하면 다 먹자!

 


위기

지렁이 기르기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을 무렵, 먹이를 주려고 지렁이 집으로 갔는데 분명 덮어놓았던 뚜껑이 열려있고 스티로폼 쪼가리가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통을 열고 흙을 파보니 지렁이가 없다?! 몇마리 남아있던 지렁이들이 빠르게 흙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범인은 ''였다. 배수구를 통해 들어온 쥐가 지렁이를 야금야금...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렁이 집 뚜껑은 동물이 열기 힘들게 만들라' 는 교훈을 뒤로 한 채,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새 출발을 했다. 다행히 계절이 가며 지렁이들은 다시 세를 불려나가기 시작했고, 흙은 데글데글하니 비옥해졌다.

 


지렁이의 죽음

이듬해 초여름 이사를 했고 두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수분관리!! 늘 습했던 이전 집과는 달리 새로 이사한 곳은 해와 바람이 잘 통하는 보송보송한 곳이었다. 따라서 축축함이 유지되도록 지렁이 집에 물을 자주 뿌려줘야 했지만 깜빡하기가 일쑤. 이때쯤 밖으로 기어 나와 말라붙어 죽어있는 지렁이가 한두마리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환경이 맞지 않으면 밖으로 기어 나온다) 그렇게 개체수가 줄어들 무렵 방심하고 며칠 물 관리를 잊어버린 사이 지렁이는 모두 운명하고 만다. 마음이 썰렁했다. 지렁이를 기른지 일년 반 만이었다.

 


그 후의 이야기

지렁이를 기르고 얼마 안 되어 지렁이 집에서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먹고 버린 파프리카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었다. 조심스레 파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때늦게 발아한 씨앗은 집안에서 겨울을 난 후 옥상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이 옥상텃밭의 시작. 그 후 집 근처에 공동 텃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5평의 땅을 분양받은 후 지금까지 거기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지렁이는 갔지만 나에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었다.


옮겨심은 파프리카 싹. 다음해 열매까지 맺었다.

Posted by 비전화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