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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함께하는 비전화공방/비전화수기

[비전화수기공모] 작게 더 작게, 매 순간 고민하고 사랑하고 함께 울고 웃고 나누며 더불어 살고 싶다 / 놀궁리

 비전화수기공모



작게 더 작게매 순간 고민하고 사랑하고 함께 울고 웃고 나누며 더불어 살고 싶다

놀궁리


물이 차서 손이 시리다. 두꺼운 겨울옷은 빨기도 짜기도 말리기도 쉽지 않다. 몇 년 동안 세탁기 없이 살며 이젠 나도 손빨래의 고수라고 으쓱했는데, 겨울이 다가오니 힘겹다. 어제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빨래가 황태마냥 얼었다 녹았다 솔숲 바람을 맞으며 꾸덕꾸덕 마를 계절이 머지않았구나. 한낮의 햇살이 너무나 고마운 이곳은, 강원도보다 춥기로 유명한 중부 내륙 산간지역. 경상북도 봉화다.


남편()과 나(놀궁리)2013년에 도시를 떠나와, 소백산 자락에 터를 구했다. 가진 것이 정말 맨 땅 뿐이라 아직도 맨땅에 헤딩중이다. 처음엔 좋았다. 절로 많은 것이 내려놓아졌으니. 세탁기를 치우고, 생태 뒷간을 짓고, 텃밭을 일구고, 바깥과 안의 경계가 희미한 집에서 햇볕 바람 맞으며 살고. 이 땅에 원래 살던 생명들과 흙 위에서 뒹굴면서, 오래오래 함께 살겠노라 했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내 한 걸음 한 걸음이 여전히 많은 생명을 짓밟고 파괴한다는 생각이 들어 인간으로서의 삶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잘 하는 건 쭈그리고 하는 손빨래뿐이라,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우리 터엔 오래 전에 파놓은 작은 관정이 있다. 가물어도 마르지는 않지만, 물이 쫄쫄 나와서 바로 쓰지는 못하고 큰 통에 받아놓고 쓴다. 처음에는 작은 발판 하나가 빨래터며 수돗가였는데, 작년에 경량목과 방부목으로 너른 바닥을 짰고, 벽과 지붕을 세웠다. 그럴싸한 목조건물! 이제는 비가와도 걱정이 없다.



― 빨래터 변천사. 여전히 플라스틱 천국이라 고민이다. 

1. 발판 빨래터


2. 사다리 빨래대와 발판 빨래터


3. 너른 무대 같은 빨래터


4. 벽과 지붕이 있는 빨래터


볕 좋은 낮엔 다른 일을 제쳐두고 폭풍빨래! 이제는 세탁기 일하는 시간 만큼이면 세탁기만큼 빨래를 한다. 돌려놓고 다른 일 하냐 못하냐의 차이와, 내 손목 곰 손목 나갈지도 모른다는 차이뿐. 난 인간 세탁기, 곰은 곰 탈수기가 다 되었다!! 손빨래의 친구는 뭐니뭐니해도 빨래판. 따뜻한 물 끓는 물이 있으면 좋다. 그리고 소프넛 열매, 순비누, 과탄산, 베이킹소다. 섬유유연제가 필요한 경우엔 구연산을 쓴다.


한여름의 빨래 

빨래가 자꾸자꾸 생기는 마법 빨래를 분리해서 하면 쉽고 빠르다물도 적게 들고..


굵은소금, 베이킹소다, 과탄산, 순비누, 구연산 

내 치약은 숯가루+베이킹소다+죽염곰은 생협 치약을 쓴다.



손목 관절은 소모품이라던데, 꽤나 많이 써버리고 삐걱삐걱해져서야 드디어 터득한 손빨래의 요령이랄까.


1. 빨래거리를 나눈다. 흙이 많이 묻은 작업복/어두운 색깔 옷/밝은 색깔 옷/수건 행주 속옷


2. 수건, 행주, 속옷은 스텐 대야에 담아 과탄산을 뿌리고, 팔팔 끓는 물을 부어 삶는다. 달걀 껍질이나 구연을 넣고 삶으면 누래진 런닝셔츠나 목덜미 색깔이 변한 하얀 티셔츠도 제 빛을 찾는다.


3. 미지근한 물에 옷을 담궈놓는다. 순비누 가루나 소프넛 열매 우린 물을 아주 조금 넣고 조물조물


4. 밝은 색깔 옷에 눈에 띄게 묻은 얼룩은 순비누로 지운다


5. 빨래판에 치대거나 칫솔로 문지르기.밝은 색깔 빨래부터 마치고, 어두운 색깔 빨래를 한다. 작업복이나  두꺼운 옷은 발로 밟는다.


6. 두 번째 헹굼물 부터 돌려서 쓴다. 수건 행주 속옷 헹굼물에 밝은 색깔 옷 헹구고, 그 물에 어두운 색 옷  헹구는 식으로. 얼마 안 되는 물로 깨끗하게 헹굴 수 있다.



세탁기로 빨 때보다 물을 획기적으로 적게 쓴다. 세탁기에 돌린 옷 특유의 눅눅한 냄새나 세제 냄새가 안 난다. 옷이 덜 헤져서 오래 입는다. 린넨이나 얇은 면 소재의 옷은 특히나. 곰 탈수기가 손아귀 힘을 조절 못 하고 꽉 비틀어 짤 땐 내 런닝이 아저씨 난닝구만큼 늘어나기도 했지만, 이젠 곰 힘도 예전 같지 않고, 요령이 생겨 적당히 잘 짠다. 햇볕의 위력은 엄청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도 한낮 전에만 널어놓으면 웬만해선 해 지기 전에 다 마른다. 바삭해진 빨래를 걷어 바로 입는 느낌은, 햇볕을 품고 빨갛게 익은 사과를 따서 바로 먹는 것 만치 싱그럽다. 합성세제를 쓰지 않으니 맨 손으로 빨래를 해도 손이 가렵거나 따갑지 않아 좋고!


하지만 고충이랄까 부작용도 만만치 않으니, 한여름에 햇빛 잔뜩 맞으며 빨래를 하고 나면 등땀에 쩐 웃옷과 흠뻑 젖은 바지가 생긴다. 도무지 빨래가 끝나지 않아!! 옷을 고르는 기준도 바뀌었다. 새로 옷을 살 일이 생기면, 예쁜 옷보다는 빨래가 편한 옷을 사게 된다. 너무 공들여 빨지 않아도 얼룩이 보이지 않아야 하고, 잘 말라야 하니까. 밝은 색 옷이 사라져가고, 차콜, 검정, 회색, 카키, 네이비 등 진한 색깔의 옷만 입는다. 청바지도 좀처럼 입기 어려워졌다. 물이 잘 빠지고, 한번 빨라치면 좀처럼 짤 수가 없고, 잘 안 말라서.


장작에 불을 붙여 빨래를 삶고 물을 데워보기도 했지만, 장작 주워와 패고 불을 지펴 따뜻한 물을 쓰고 빨래를 삶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몸이 너무 고되어 포기했다. 심지어 불 위에 빨래를 올려놓고 젓다가 거의 다 삶은 빨래를 엎어버리기도. 지금은 돼지꼬리로 물을 데우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서 쓴다.


― 장작으로 빨래 삶던 시절. 저러다 엎어버리기 일쑤였다.


펌프로 물을 퍼내고, 돼지꼬리와 전기포트로 물을 데우고, 겨울이 다가올수록 온수매트가 소중해지는 삶. 빨래터만 둘러보아도 플라스틱이 한가득인 이런 삶. 비전화사례가 맞는지 계속 헷갈려서 마지막 날까지 고민했다


생태적인 삶을 살겠노라 시골에 왔다는 이야기조차 입에 올리기 부끄럽다. 내 몸 편하고 따숩자고 자원을 땡겨 쓰고, 다른 생명에게 영향을 끼치고, 에너지를 태우고 온난화에 기여하는 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모든 노력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탈핵이라든지 생태적이고 조화로운 삶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가기보다는, 작게 작게 더 작게, 매 순간 고민하고 사랑하고 함께 울고 웃고 나누며 더불어 살고 싶다


― 설거지 할 땐 수세미 열매를 늙혀서 만든 수세미와 삼베 수세미를 쓴다

기름 묻은 설거지와 안 묻을 설거지를 나눠서 기름 안 묻은 설거지는 세제 없이 수세미로만 한다기름기가 적은 경우엔 따뜻한 물에 베이킹소다 만으로도 기름기를 지울 수 있고아주 심한 기름기를 지울 때는 순비누를 조금 쓴다물 받는 통도 빨래판도 바가지도 바구니도 칫솔도 플라스틱 투성이인 수돗가에서 그나마 설거지 할 때만이라도 미세플라스틱을 덜 만들 수 있는 건수세미 열매 수세미랑 삼베 수세미 덕분이다.